
강경석 사회부 차장
“한쪽에서 신공항 만들겠다고 하면, 다른 쪽에서 해저터널 뚫겠다고 하는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재원 계산해 가면서 따지고 있다간 타이밍만 놓칠 뿐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 국면에서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놨던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 공약과 가덕도와 일본 규슈 간 한일 해저터널 건설 공약에 대해 최근 이렇게 말했다. 가덕도 신공항은 2029년 개항을 목표로 건립이 진행 중이지만 한일 해저터널은 아마 저런 공약을 내걸었는지 기억조차 못 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에게 한일 해저터널 진척 상황에 대해 묻자 “아직 구체화된 건 없다”는 하나 마나 한 답만 돌아왔다. 한일 해저터널 공약은 결국 조용히 사그라질 게 뻔하다.
3년이나 지난 공약을 기억에서 소환할 것도 없다. 불과 한 달여 전 4·10총선에 출마한 후보자들과 정당들은 피 토하는 심정으로 열변을 토하며 각종 공약을 내걸었다. 특히 여야는 인구소멸 위기를 돌파하겠다며 올해 1월 같은 날 저출산 공약을 발표했다. 유급 ‘아빠 휴가’를 의무화하거나, 신혼부부에게 1억 원을 대출해 주고 셋째까지 낳으면 전액 탕감하겠다는 장밋빛 공약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 법안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 4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됐지만 오전 10시 36분부터 오후 5시 45분까지 국회의원 14명과 고용노동부 장차관과 실국장 18명이 참석한 상임위에서 단 한 글자도 상의되지 않은 채 잠들어 있다. 오찬을 위해 정회한 2시간 25분을 제외하더라도 온종일 단 한마디 언급조차 되지 않은 법안을 총선 공약으로 들고나온 건 사실상 기만에 가깝다.
다른 법안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모자보건법에 따라 난임부부를 지원하는 대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별도로 난임 치료를 지원하는 법률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이 법안은 2021년 4월 상임위에 상정된 이후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못 하고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사라질 운명을 앞두고 있다.
국민이 더 이상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를 멀리서 찾을 게 아니다. 말로는 민생을 외치고, 선거철에는 그럴듯한 공약을 내놓지만 정작 일해야 할 때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대계가 걸려 있는 저출산 문제마저 이미 발의된 법안조차 처리하지 않은 채 선거를 앞두고 공약이랍시고 재탕하는 국회에 과연 국민이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최근 한 시민단체는 21대 국회에서 저출산 대책 관련 법안 220개 중 단 7개만 처리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럴 거면 저출산을 해결하겠다고 이런저런 약속만 할 게 아니라 이미 발의된 법안이나 제대로 논의하고 처리하는 게 더 생산적이다.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