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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겁나는 가정의 달

입력 | 2024-05-06 23:21:00


가정의 달 5월은 명절 못지않게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을 챙기려니 계획 짜느라 스트레스, 돈 나가서 스트레스, 차 밀려서 스트레스 받는다. 물가가 다락같이 오른 올해 가정의 달은 아예 ‘가난의 달’로 불린다. 월별로 따지면 12월 다음으로 결혼을 많이 하는 시기여서 주말마다 돌아오는 결혼식까지 다니다 보면 5월은 ‘탈탈 털리는 달’이 되기 십상이다.

▷특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모두 챙겨야 하는 40대들 부담이 크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40대 가정의 달 추가 지출 규모는 평균 56만9000원. 어린이날 아이들과 유명 놀이공원에 다녀온 사람들은 어린이 종일 이용권 5만 원에 외식비와 간식비, 기름값까지 최소 20만 원을 썼다고 한다. 어버이날엔 카네이션 꽃바구니 6만∼8만 원, 트로트 가수 포토카드를 사은품으로 주는 홍삼 선물세트가 최소 10만 원대이니 양가 부모님 뵙고 오는 데 식사비를 제외해도 30만 원이 넘게 든다.

▷각종 기념일에 5만∼10만 원 하는 결혼식 축의금까지 ‘지출의 달’ 목돈 마련을 위한 서민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배달 같은 단기 알바를 뛰거나 휴일과 야간 근무로 특근 수당을 챙긴다. 중고사이트에 물건을 내다 팔아 현금화하고 5월 전후로 식비와 여가비를 최대한 졸라맨다. 정기 적금을 들고, 미리 들어둔 적금이 없으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거나 예금 가입과 동시에 이자부터 주는 적금에 가입해 ‘텅장(텅 빈 통장)’을 채워 넣는다.

▷가정의 달 후유증이 커지자 기념일 무용론도 제기된다. “요즘 애들은 모두 금쪽이여서 365일 어린이날인데 꼭 어린이날이 있어야 하나” “명절과 생신 챙기는데 효도하는 날까지 따로 정해져 있어 부담된다”는 것이다. 어버이날 양가 부모님 찾아뵙는 순서, 선물이나 식대 지불 문제로 명절 못지않게 부부싸움을 한다는 집들도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없애고 대신 ‘가족의 날’을 만들어 한 번만 지내자는 제안도 나온다.

▷외국에도 ‘마더스 데이’가 있지만 후유증 얘기는 없다. 수수한 꽃다발을 건네는 정도로 부담이 크지 않다고 한다. 가정의 달 특수를 노리는 장사꾼들은 ‘돈 가는 곳이 마음 가는 곳’이라 부추기지만 부모 자식 간 정이 봉투로 전달될 리 없다. 요즘 TV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늦둥이 자녀를 키우는 프로그램이 화제인데 다들 여유 있게 사는 집이지만 아이들이 웃는 순간은 아버지와 김밥을 만들어 먹거나 동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때다. 그런 소소한 일상을 부모님과 공유하는 것이 효도 아닐까. 제사상 차리기 힘들어 명절이 싫듯, 놀이공원 입장료와 인기 가수 포토카드 부담에 가정의 달이 ‘겁나는 달’이 돼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