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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서 미안” 폐지 판 3만원 기부한 세아이 아빠

입력 | 2024-05-07 03:00:00

“기초수급 받지만 더 어려운 이 위해”
꼬깃꼬깃 지폐 다리미로 한장씩 펴
과자와 함께 지구대 인근에 두고 가



6일 오전 부산 북부경찰서 덕천지구대에 자신을 ‘세 아이의 아빠’라고 소개한 남성이 두고 간 상자 안에 라면과 과자, 1000원짜리 지폐 30장이 든 편지봉투가 담겨 있다. 덕천지구대 제공


‘세 아이의 아빠’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이 어린이날 연휴 경찰서 지구대에 과자와 라면 등이 담긴 상자와 1000원짜리 지폐 30장이 든 편지봉투를 전달하고 사라졌다. 이 남성은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전달해 달라며 폐지를 팔아 모은 돈으로 기부 물품을 마련했다고 한다.

6일 부산 북부경찰서 덕천지구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10분경 5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커다란 종이 상자를 지구대에서 약 5m 떨어진 인도에 놓고 황급히 사라졌다. 상자에는 “어려운 아이 가정에 전달됐으면 합니다. 세 아이 아빠 올림”이라고 적힌 하얀색 편지봉투와 아동용 상의 1개, 과자, 라면 등이 담겨 있었다. 봉투에는 낡은 1000원짜리 지폐 30장과 자필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폐지를 팔아 모은 돈으로 마련했다. 어려운 아이 가정에 상자가 전달되면 좋겠다”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덕천지구대 제공 

이 남성은 편지에서 장애 3급을 앓는 첫째 등 3명의 자녀를 둔 가장이라고 소개했다. 가족들이 기초생활보장 수급 지원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폐지를 팔아 모은 돈으로 옷과 과자, 현금 등을 마련했다”며 “한 달 동안 땀 흘리며 노력했는데 많이 (기부하지) 못해 미안하다. 적은 금액이라도 받아 달라. 꼬깃꼬깃한 지폐를 다리미로 한 장씩 폈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어린이날 어려운 아이 가정에 상자가 전달되면 좋겠다”며 “아동이 옷과 과자를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고, 적은 현금으로 피자라도 맛있게 먹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폐쇄회로(CC)TV를 통해 남성의 인상착의를 확인한 지구대 직원들은 이 남성이 지난해 10월에도 목욕탕 화재를 수습하다가 다친 소방관과 경찰관을 위해 써 달라며 지폐 4만5000원과 자필 편지가 든 상자를 놓고 간 남성과 동일 인물이라는 걸 확인하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정학섭 덕천지구대 순찰팀장은 “어린이날을 맞아 상자를 덕천2동 행정복지센터에 두고 가려고 하다가 휴일이라 지구대에 가져온 것 같다”며 “어려운 형편의 아동에게 이 상자가 전달될 수 있도록 행정복지센터에 상자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