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살 생일파티에 마침내 ‘슈퍼스타’ 추앙받는 모습에
괜스레 감개무량하고 코가 찡했다. 내 마음은 왜였을까.
세상 하나뿐인 도널드덕~♬”
만년 꼴등까지 갈 것도 없다. 만년 2등이 결국 모두에게 사랑과 박수를 받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왈칵하고 차올라버린다. 바로 얼마 전 40주년 행사를 마무리한 도쿄 디즈니랜드가 올봄 펼치고 있는 ‘도널드덕 더 레전드’ 퍼레이드를 보고 온 소감이다.

지난달 9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특별 이벤트 ‘도널드의 쾌키 덕 시티’가 열리는 도쿄 디즈니랜드는 지금 온통 흰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물들어있다. 퍼레이드 ‘도널드 더 레전드’에도 오리 코스튬을 입은 댄서들이 대거 등장해 ‘넘버원’ 깃발을 흔들었다.

1950년대 방영된 〈Donald‘s Award〉

다혈질이기로 유명한 두 캐릭터가 등장한 만평. “도널드가 도널드한테 이긴 거야?” “유유상종이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어마어마한 관세를 물렸던 2018년 7월, 캐나다 매체 ‘에드먼턴 저널’의 만화가 맬컴 메이예스가 그렸다.
모두에게 사랑받기 어려운 캐릭터,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도널드덕은 어떤 사람들에게 짠하고 깊은 애정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도널드덕은 디즈니 캐릭터 중 유일하게 군대에 입대해 일본군과 싸웠다. 람보처럼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침투해서 어찌어찌 일본군을 섬멸시키기도 했지만―요즘도 한국 시청자들에게 주기적으로 조명받는 활약이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에 시달리기도 했다.
1944년 6월 작 ‘오리 특공대(Commando Duck)’. 간신히 살아남은 도널드덕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일본군을 수몰시킨다.
그래서일까. 미 육군에서 싸운 경력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선 유독 미키마우스보다 도널드덕의 인기가 더 좋다. 항상 반듯하고 각 잡힌 군인 이미지라는 ‘선입견’을 뒤집어쓴 독일인들은 도널드덕의 좌충우돌을 보고 웃으면서 사실은 자기 모습을 본다고 한다.
“똑똑한 미키와 달리 도널드덕은 뭘 해도 안 되는 루저이고 완벽하지도 않아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죠.”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의 한 교수는 AFP통신에 그들이 ‘영원히 불운한 오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 생각도 똑같다.
그에겐 결점이 많다. 도널드는 오만하고, 욕심이 많고, 자존감도 낮은 오리다. 하지만 세 조카 휴이듀이루이를 살뜰히 챙기고, 요리를 좋아하고, 매일 질투 속에 살면서도 세일러복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챙겨 매며 뽐을 낸다. 늘 밝고 완벽한 미키마우스가 유재석이라면, 약점 많은 도널드는 정형돈 같은 캐릭터다.
도널드덕과 정형돈에겐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뻔뻔한 태도, 다혈질 성격에 (종류는 다르지만) 꽥꽥대는 목소리를 가졌고, 동시에 다른 캐릭터들과 훌륭한 케미를 자랑한다는 점이다. MBC 무한도전 캡처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하며 산 것 같지만, 결과까지 최고가 된 적은 드물었다. 그런 내가 한숨을 쉬며 말하던 단어를 삶의 모토로 삼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나왔던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의 책 ‘마음의 지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꾸역꾸역. 언제부터인가 저에게 이 말은 존경과 감사를 담은 표현이 되었습니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의 저서 <마음의 지혜>에서 발췌.
미키와 도널드덕의 ‘숙적’ 블랙 피트까지 도쿄 디즈니랜드 퍼레이드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했다. 도쿄 디즈니랜드 홈페이지 캡처
도쿄 디즈니랜드 공식 홈페이지에는 이번 이벤트가 이렇게 소개돼있다. “일상에서는 있을 수 없었던, 도널드가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세계로 변신한 놀이공원을 즐겨보세요!”. 도쿄 디즈니랜드 홈페이지 캡처
나는 안심하며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Yeah, we love Donald Duck. The one and only Donald Duck~.”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