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81〉 토리노의 말, 화주의 말
영화 ‘토리노의 말’에서 주인 부녀와 말은 절망적인 현실을 함께 견뎌 나간다. 전주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제공
1889년 토리노에서 니체가 마부의 채찍질에도 요지부동인 말을 껴안고 통곡했다면, 758년 두보는 화주(華州)에서 관군이 길에 버린 야윈 말을 보고 이렇게 슬퍼했다.
벨라 타르 감독의 마지막 영화 ‘토리노의 말’(2011년)은 니체가 끌어안고 절규했던 토리노의 말을 모티프로 삼았다. 영화는 황량한 외딴집에 사는 가난한 부녀의 6일간의 모습을 조명한다. 아침이면 마차를 몰고 나가는 아버지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식사용 감자를 삶는 딸의 단조로운 하루하루가 그려진다. 부녀는 마구간 밖으로 나가길 거부하며 먹지 않는 말을 달래고 어르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간다.
영화에선 우물이 마르고 램프에 불도 붙지 않는 사건들이 이어진 뒤 절망적인 여섯 번째 날을 맞는다.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듯한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는 그럼에도 딸에게 “먹여야만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말은 절망의 표상인 동시에 포기할 수 없는 삶과 희망의 상징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