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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의 실수로 버림받아 야윈 말… 절망적 운명이여

입력 | 2024-05-09 03:0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81〉 토리노의 말, 화주의 말



영화 ‘토리노의 말’에서 주인 부녀와 말은 절망적인 현실을 함께 견뎌 나간다. 전주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제공


1889년 토리노에서 니체가 마부의 채찍질에도 요지부동인 말을 껴안고 통곡했다면, 758년 두보는 화주(華州)에서 관군이 길에 버린 야윈 말을 보고 이렇게 슬퍼했다.

이 무렵 시인은 화주로 좌천되었다. 숙종은 안록산의 반란이 진정되자 아버지 현종의 옛 신하들을 제거하기 시작했고, 시인이 의지하던 재상 방관(房琯)도 외직으로 쫓겨났다. 시인이 좌천된 것도 방관을 옹호한 전력 때문이었다. 시인이 교외에서 우연히 보고 애달파했던 말은 본래 궁중의 마구간에 있던 명마였다. 하지만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다쳐서 거두어 주는 이조차 없이 까마귀가 상처를 쪼아대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日暮不收烏啄瘡”)

벨라 타르 감독의 마지막 영화 ‘토리노의 말’(2011년)은 니체가 끌어안고 절규했던 토리노의 말을 모티프로 삼았다. 영화는 황량한 외딴집에 사는 가난한 부녀의 6일간의 모습을 조명한다. 아침이면 마차를 몰고 나가는 아버지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식사용 감자를 삶는 딸의 단조로운 하루하루가 그려진다. 부녀는 마구간 밖으로 나가길 거부하며 먹지 않는 말을 달래고 어르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간다.

시인에겐 말을 노래한 시가 많은데, 이 시는 그중에서도 자신의 삶과 의식이 가장 강렬하게 투영된 작품이다. 어떻게 막을 방법도 없이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버려진 말의 처지에서 시인은 조정에서 쫓겨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한다. 감독 역시 말을 통해 인간의 절망적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에선 우물이 마르고 램프에 불도 붙지 않는 사건들이 이어진 뒤 절망적인 여섯 번째 날을 맞는다.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듯한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는 그럼에도 딸에게 “먹여야만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말은 절망의 표상인 동시에 포기할 수 없는 삶과 희망의 상징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