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학전’ 폐관 두달] ‘학전’ 정체성 훼손 막으려 폐관… 새 어린이극장에 이름 사용도 거절 지인들 “항암치료로 몸 많이 부어… 다들 너무 오래 그를 잊고 살았다”
《‘학전’ 폐관 두달, 위암과 싸우는 김민기
굳게 닫혔던 문을 열자 묵은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서울 대학로 학전 건물의 4층 사무실. 김민기(사진)가 떠난 빈자리엔 그가 피우던 담배 냄새만이 남아 있었다. 위암 4기로 경기 고양시 일산 집에서 칩거하는 그의 ‘지금’을 살펴봤다.》
뒤늦게 대중도 그를 찾는다. 그의 옛날 노래를 다시 듣고, 과거 동영상을 일부러 찾아본다. 관심이 ‘반짝’ 높아진 것과 상관없이 그는 대중 앞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 가수이자 극단 학전(學田)의 대표 김민기(73) 얘기다.
● “고맙다” “미안하다”
극단 및 소극장 학전을 33년 동안 운영해 온 김민기 대표. 동아일보DB
그해 11월 김민기는 학전의 폐관 결정을 대외적으로 알리게 된다. 한 달여 뒤 12월 31일 학전의 송년회 자리.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김민기가 들어오자 주위는 차분해졌다. 할 말이 많은 자리였지만, 김민기는 말을 아꼈다. “고맙다” “미안하다” 정도. 학전 출신 배우 이황의는 “치료가 힘드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저희도 폐관에 대해 물어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학전의 폐관 소식이 알려지자 주위의 관심이 커졌다. 물론 김민기도 학전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위탁 운영도 의논했다. 하지만 김민기는 스스로 학전이란 이름을 지우기로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다른 곳에서 운영한다고 되겠나. 그건 아닌 거 같다.”
● “우리는 김민기를 잊고 있었다”
지난해 1월 6일 학전에서 열린 제1회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에서 심사를 맡은 김 대표(오른쪽) 모습. 동아일보DB
이런 뒤늦은 깨달음은 김민기의 선후배들도 다르지 않았다. 강헌 음악평론가는 “김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뒤 학전 출신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들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민기 형이 그렇게까지 아픈 줄 몰랐다’는 말들이 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도 그럴 것이 김민기는 자신의 병세에 대해 주위에 전혀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가수 한영애는 “걱정되고 염려는 되지만 일부러 전화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분이 그런 것(안부 전화)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건강해지길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학전’ 이을 이름 찾는 ‘대국민 공모전’
이에 내부 구조 변경도 최소화하고 대대적인 도색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공연장이 문을 열면 이전 학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방지영 아시테지 이사장은 “학전에 이어 새롭게 마련되는 공연장은 어린이극을 창작하고 제작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여러 공연을 시도하고, 그것을 어린이·청소년들과 직접 선보이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학전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활용해 어린이극 제작의 링크와 허브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공연장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김민기가 떠난 학전은 이제 ‘구(舊)학전’이라 불리고 있다. 새 공연장 이름을 짓기 위한 ‘대국민 극장명 공모전’은 9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