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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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중 엄마의 실수, 기특했던 아이들의 대응
그나저나 내가 그 난리를 치르는 새 함께 간 아이들 네 명은 어디 있었을까? 아이들까지 챙길 정신이 없어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라 했는데, 아이들은 혹시나 할아버지가 가방을 갖고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돌아가며 역 앞에서 당번을 섰다고 한다. 허기질 시간이라 낮에 산 간식을 나눠 먹었고, 심심하면 서로 말 주고 받기 게임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랬단다. 미안하면서도 기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대형사고 수준은 아니지만, 여행 내내 작은 실수는 계속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날은 조식을 먹으러 숙소 식당에 내려갔는데 조식표 한 장을 안 들고 와서 다시 방에 올라갔다 와야 했다. 아이들이 기다릴 생각에 헐레벌떡 뛰어갔다 왔는데 웬 걸, 어느덧 네 명 모두 식판에 야무지게 음식을 담아와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손에 잘 닿지 않는 음식은 주변 사람에게 ‘도와 달라’ 부탁까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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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아이들 데리고 여행 갔다 왔다고 하면 ‘엄마가 혼자 애들을 다 어떻게 챙겼느냐’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엄마 혼자 다 챙긴 건 아니다. 아이들끼리도 서로 챙기기도 하고, 때로는 엄마가 챙김을 받기도 했다. 엄마가 모든 걸 다 해줘야 하는 여행이었다고 하면 아마 힘들어서 가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스스로 완수해내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은 예닐곱 살부터는 스스로 머리 감고 이를 닦게 했다(물론 처음에는 부모의 점검이 필요하다). 학교, 학원도 첫 한두 달이 지난 뒤부터 혼자 다니도록 했다. 어쩔 수 없이 근무해야 하는 휴일, 아이들끼리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처음엔 당연히 실수가 있었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금세 적응하고 잘 해냈다. 지난 여행 때 아이들의 의연한 대처도 평상시 이렇게 스스로 각자 일을 해본 습관 덕 아닐까 짐작해 본다.
독일 쾰른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외국인과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분들을 만나 한국의 저출산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하고 서울에 사는 몽골인 A 씨(32·여)는 한국 엄마들로부터 “시집와서 칼을 처음 만져 봤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몽골에선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부터 식사 준비에 참여한다. 감자 같은 건 네다섯 살 때부터 깎았다”고 한다. 매일 오후 학교 정문 앞에서 부모들이 줄지어 서서 아이들 하교를 기다리는 모습도 신기했다고. “한국 초등학교는 대부분 집에서 가깝다. 이상한 사람을 따라갈까 걱정이라면 아이에게 잘 가르쳐주면 될 텐데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부모들의)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A 씨의 말이다.
독일 여성과 결혼해 10년째 독일에서 사는 B 씨(37)는 반대로 독일 육아 방식을 보고 놀란 경험이 있다. “한국 부모들은 매일 규칙처럼 아이들을 씻기잖아요. 독일에선 부모들이 며칠씩 놔두더라.” B 씨에겐 아이 옷 단추를 채워주지 않거나, 넘어져도 곧장 가서 일으켜 주지 않는 부모 역시 생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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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외 경험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 육아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빡세다(힘들다)”는 것이었다. A 씨는 첫째가 서너 살쯤 시어머니에게 들은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이가 물을 흘렸는데, 스스로 닦도록 두었더니 저에게 ‘부모란 이런 일(아이 뒤치다꺼리)이 직업인 사람’인데 왜 치우지 않느냐셨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몽골 부모란 아이에게 꼭 필요한 돌봄과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반면 한국 부모는 “전업주부처럼 육아에 온 정성을 쏟는 사람”이라고 했다. B 씨도 비슷했다. 그는 “독일을 경험해보니 확실히 한국 부모들에겐 요구되는 게 더 많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왜일까. 부모와 자녀 간 유대가 각별한 유교 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고,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탓에 부모가 그 역할을 상당 부분 책임져 온 탓일 수도 있다. 갈수록 자녀 수가 줄면서 더 심해진 것일 수도 있다. 아이 둘 엄마인 한국인 C 씨(45·여)는 식당에서 본 한 가족 사례를 전했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 그리고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까지 4명이 식사하는데, “엄마는 아이 밥을 떠먹이고, 할머니는 아이 반찬을 자르고, 아빠는 아이 얼굴에 묻은 것을 닦거나 물을 가져다주고 있더라”는 것. 결과적으로 아이는 거의 손 하나 까닥이는 일 없이 식사하고 있는 셈이었다.
● 헌신적인 육아, 조금만 힘 빼보면 어떨까
어떤 이유이든 너무 헌신적인 육아로 인해 많은 부모가 육아를 고되고 어렵게 느낀다는 게 문제다.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귀화한 파키스탄인 D 씨는 “아이 엄마는 나보다 한국말을 못 하는데, 아이 숙제를 도와야 하고 엄마가 할 일이 너무 많아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한국어를 잘하는(!) 한국인 지인들도 힘들어하긴 마찬가지다. ‘매 주말 학원 라이드 해야 해서,’ ‘아이가 갖고 싶다는 걸 사줘야 해서,’ ‘아이가 못하면 내가 부족한 탓 같아서’ 힘들다.
취재 과정 중 만난 한 외국인은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들며 “한국에선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통 부모’만 필요한 듯하다”고 우스개 아닌 우스개소리를 했다. 힘을 들일 땐 들이더라도 빼야 할 땐 없는지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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