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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 “자발적 고독을 추구하는 중입니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입력 | 2024-05-11 14:00:00

고독의 즐거움[1]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혼자라고 여긴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마음 편히 즐기기 어렵다. 휴식, 이완,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고독한 시간이 주는 힘에 대해 알아보자. 게티이미지뱅크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주지.”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절친한 화가였던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는 때때로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기도 했지만, 고독을 예술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아를의 침실’은 화려한 색채 구사에도 불구하고, 텅 빈 방의 공허함을 전달한다. 이 외에도 그의 그림에는 ‘시인의 정원’ ‘구름 낀 하늘 아래 밀밭 풍경’ 등 아무도 없는 자연에서 고독함을 드러내는 작품이 유독 많다.

고흐는 고독함에 꺾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많은 경우에는 혼자 있을 때 의기소침하고 위축되기 쉽다.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이 일상이 됐다 하더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반복되면 문득 “난 왜 친구가 없을까?” “인생을 잘 못 살았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같은 회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고독사’ 같은 단어는 고독을 더 쓸쓸하고 처절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하지만 반드시 ‘인싸(인사이더)’라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아싸(아웃사이더)’라고 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아무도 없이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도 평안과 휴식, 자유, 창의성을 느끼면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며 살 수 있는 능력이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독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걸까.

빈센트 반 고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풍경화를 통해 고독을 담아냈다. ‘시인의 정원’(1888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 고독이란, 나 자신과 함께 있는 상태

그동안 많은 연구에서는 친구가 많고, 대인관계가 활발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봐왔다. 탄탄한 사회적 지지가 있으면 정서적 어려움에서 비교적 쉽게 회복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이 해롭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외로움, 우울, 불안을 동반하는 ‘나쁜 고독’ 말고, 휴식과 이완을 주는 ‘좋은 고독’에 대한 연구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심리적으로 여러 이점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핵심이다. 고독에 관한 연구가 새롭게 주목받는 것은 1인 가구가 늘고, 평균 수명이 올라가면서 다양한 연령대에서 홀로 있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독이 불가피한 현대인들이 혼자 보내는 시간을 잘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고독은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고독한 시간을 즐기려면 고독이란 ‘아무와도 함께 있지 않은 단절된 상태’에서 ‘나 자신과 함께 있는 상태’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단절된 느낌은 우울감이나 고립감을 유발해 혼자 있는 시간을 편안하게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고독의 기술’

혼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비결이 있을까. 영국 레딩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뭘 할 때 만족하는지 알아봤다. 연구팀은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2035명을 대상으로 혼자 있는 시간에 새롭게 알게 된 것, 좋거나 나빴던 것, 쉬웠거나 어려웠던 것에 대해 기록하도록 했다. 또 자발적으로 혼자 있었는지, 외로움이나 평안함을 어느 수준으로 느꼈는지도 함께 기록했다.


홀로 있는 시간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중에서 유독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적 특징을 보였다. 우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은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이들은 혼자 있을 때 요리, 그림 그리기, 공예, 외국어 공부, 운동, 악기 연주, 독서, 온라인 강좌 듣기, 음악 듣기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했다.

혼자 있을 때 자신을 돌보는 행동을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명상을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생각을 정리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등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하지 못하는 것을 했다.

혼자서 자연과 교감하며 기쁨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다. 정원을 가꾸거나, 공원을 산책하고, 등산하면서 잡념을 떨쳤다. 특히 노인들은 자연에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덜 외로운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혼자 있을 때 지루하고 우울하다면,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는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와 반대로 혼자있는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울, 불안, 지루함을 호소했다. 이들은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아예 생활 리듬이 깨지거나, 잠에서 깨도 침대에서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뭘 해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했고, 혼자 있는 동안 불행하다고 느꼈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의 특징

(혼자 시간을 보내면…)
·재충전할 수 있다.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
·고요함을 즐길 수 있다.
·나의 내면과 접촉할 수 있다.
·나의 솔직한 감정에 머무를 수 있다.
·내가 정말로 흥미 있는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출처: 단축형 고독 동기 척도(MSS-SF)
혼자 있을 땐 더 격렬하게 혼자 있기

또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미국 미들베리 칼리지 심리학과 연구팀은 혼자 잘 지내는 사람들의 특징을 연구하기 위해 혼자 놀기 고수들을 모집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가족, 직장,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건강한 30~60대 성인들로, 업무시간 외에 일주일에 평균 30시간 이상을 혼자 보냈다.

일단 이들은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운 상태’로 정의하며, 이를 선물, 풍요, 평화, 영양공급 등으로 묘사했다. 또 혼자 있는 시간을 지루해하지 않았고, 의식의 흐름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책을 읽거나, 목욕하거나, 식물을 가꾸는 등 소소한 휴식을 취하면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했고, 이들은 이때 충전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답했다.

자연과 교감하면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좋지 않은 기분을 다스릴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리고 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로 활용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궁금해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삼았다. 때로는 외로움, 슬픔, 절망 등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이들은 혼자서 고요히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답했다. 특히 앞서 연구에서처럼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 기분이 나아졌다고 한 이들이 많았다.

즐거운 고독의 핵심은 자발성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들이 자발적인 고독을 추구한다는 점이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자유를 즐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택했다. 이 시간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더 기쁜지 알아가려고 했고, 긴장을 풀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다. 그래서 이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을 혼자 있는 시간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이들은 혼자 있을 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멀리했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외로움이나 불안감이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 참여자들은 충분히 혼자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엔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더 행복한 마음으로 어울릴 수 있었고 했다.

혼자 있는 것보다 친구, 지인들과 약속이 많고 사교적인 게 더 좋다고 여기는 편견도 내려놓아야 한다. 대인관계 기술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혼자 있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기에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연구팀은 “혼자 있고 싶을 때 억지로 사교적인 자리에 나가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기꺼이 혼자 있도록 용기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음 주 기사 ‘고독의 즐거움[2]’에서는 △“나는 사회성 부족한 사람” 인식 버리기 △외향적인 사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의 숫자가 많으면 외롭지 않을까? 등의 내용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