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즐거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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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혼자라고 여긴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마음 편히 즐기기 어렵다. 휴식, 이완,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고독한 시간이 주는 힘에 대해 알아보자. 게티이미지뱅크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주지.”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절친한 화가였던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는 때때로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기도 했지만, 고독을 예술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아를의 침실’은 화려한 색채 구사에도 불구하고, 텅 빈 방의 공허함을 전달한다. 이 외에도 그의 그림에는 ‘시인의 정원’ ‘구름 낀 하늘 아래 밀밭 풍경’ 등 아무도 없는 자연에서 고독함을 드러내는 작품이 유독 많다.
하지만 반드시 ‘인싸(인사이더)’라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아싸(아웃사이더)’라고 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아무도 없이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도 평안과 휴식, 자유, 창의성을 느끼면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며 살 수 있는 능력이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독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걸까.
빈센트 반 고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풍경화를 통해 고독을 담아냈다. ‘시인의 정원’(1888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 고독이란, 나 자신과 함께 있는 상태
그동안 많은 연구에서는 친구가 많고, 대인관계가 활발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봐왔다. 탄탄한 사회적 지지가 있으면 정서적 어려움에서 비교적 쉽게 회복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이 해롭다고 한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고독은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고독한 시간을 즐기려면 고독이란 ‘아무와도 함께 있지 않은 단절된 상태’에서 ‘나 자신과 함께 있는 상태’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단절된 느낌은 우울감이나 고립감을 유발해 혼자 있는 시간을 편안하게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고독의 기술’
혼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비결이 있을까. 영국 레딩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뭘 할 때 만족하는지 알아봤다. 연구팀은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2035명을 대상으로 혼자 있는 시간에 새롭게 알게 된 것, 좋거나 나빴던 것, 쉬웠거나 어려웠던 것에 대해 기록하도록 했다. 또 자발적으로 혼자 있었는지, 외로움이나 평안함을 어느 수준으로 느꼈는지도 함께 기록했다.
홀로 있는 시간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꼈다. 게티이미지뱅크
또 혼자 있을 때 자신을 돌보는 행동을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명상을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생각을 정리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등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하지 못하는 것을 했다.
혼자서 자연과 교감하며 기쁨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다. 정원을 가꾸거나, 공원을 산책하고, 등산하면서 잡념을 떨쳤다. 특히 노인들은 자연에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덜 외로운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혼자 있을 때 지루하고 우울하다면,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는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와 반대로 혼자있는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울, 불안, 지루함을 호소했다. 이들은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아예 생활 리듬이 깨지거나, 잠에서 깨도 침대에서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뭘 해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했고, 혼자 있는 동안 불행하다고 느꼈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의 특징
(혼자 시간을 보내면…)
·재충전할 수 있다.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
·고요함을 즐길 수 있다.
·나의 내면과 접촉할 수 있다.
·나의 솔직한 감정에 머무를 수 있다.
·내가 정말로 흥미 있는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출처: 단축형 고독 동기 척도(MSS-SF)
● 혼자 있을 땐 더 격렬하게 혼자 있기(혼자 시간을 보내면…)
·재충전할 수 있다.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
·고요함을 즐길 수 있다.
·나의 내면과 접촉할 수 있다.
·나의 솔직한 감정에 머무를 수 있다.
·내가 정말로 흥미 있는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출처: 단축형 고독 동기 척도(MSS-SF)
또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미국 미들베리 칼리지 심리학과 연구팀은 혼자 잘 지내는 사람들의 특징을 연구하기 위해 혼자 놀기 고수들을 모집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가족, 직장,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건강한 30~60대 성인들로, 업무시간 외에 일주일에 평균 30시간 이상을 혼자 보냈다.
일단 이들은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운 상태’로 정의하며, 이를 선물, 풍요, 평화, 영양공급 등으로 묘사했다. 또 혼자 있는 시간을 지루해하지 않았고, 의식의 흐름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책을 읽거나, 목욕하거나, 식물을 가꾸는 등 소소한 휴식을 취하면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했고, 이들은 이때 충전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답했다.
자연과 교감하면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좋지 않은 기분을 다스릴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리고 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로 활용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궁금해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삼았다. 때로는 외로움, 슬픔, 절망 등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이들은 혼자서 고요히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답했다. 특히 앞서 연구에서처럼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 기분이 나아졌다고 한 이들이 많았다.
● 즐거운 고독의 핵심은 자발성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들이 자발적인 고독을 추구한다는 점이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자유를 즐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택했다. 이 시간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더 기쁜지 알아가려고 했고, 긴장을 풀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다. 그래서 이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을 혼자 있는 시간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또 이들은 혼자 있을 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멀리했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외로움이나 불안감이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 참여자들은 “충분히 혼자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엔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더 행복한 마음으로 어울릴 수 있었다”고 했다.
혼자 있는 것보다 친구, 지인들과 약속이 많고 사교적인 게 더 좋다고 여기는 편견도 내려놓아야 한다. 대인관계 기술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혼자 있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기에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연구팀은 “혼자 있고 싶을 때 억지로 사교적인 자리에 나가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기꺼이 혼자 있도록 용기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음 주 기사 ‘고독의 즐거움[2]’에서는 △“나는 사회성 부족한 사람” 인식 버리기 △외향적인 사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의 숫자가 많으면 외롭지 않을까? 등의 내용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