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과 설전을 자주 벌이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22년 재선 도전 유세를 위해 알자스 지역을 찾았을 때 일이다. “당신 때문에 살면서 처음으로 마린 르펜(당시 극우정당 대선 후보)에게 투표하려 한다.”(행인) “이유가 뭔가.”(마크롱) “당신만큼 형편없는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 오만하고 거짓말쟁이다.”(행인) “많은 토론거리를 줘서 감사하다. 하지만 당신이 계속 당신 생각만 하면 우린 토론을 할 수 없다.”(마크롱)
▷마크롱 대통령이 시민들과 만나는 현장에선 계란이나 토마토가 심심치 않게 날아든다. 극우 청년에게 뺨을 맞는 봉변도 있었다. 이 청년은 마크롱과 악수를 하다 다른 손으로 그의 뺨을 후려쳤다. 대통령이 폭행을 당한 중대 사건이지만 마크롱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폭행 위협이 있더라도 계속 소통할 것”이라며 다시 시민들을 만났다. 이후 영부인과 산책 중 시위대를 만났을 땐 “고함치지 말고 냉정히 말해 달라”며 토론을 청하기도 했다.
▷마크롱의 소통 행보를 ‘쇼’라고 폄하하는 시각도 있다. 개혁 과제를 밀어붙이면서 반대 여론을 끌어안는 것처럼 보이려는 제스처라는 것이다. 마크롱이 추진해 온 정책들을 보면 그런 쇼라도 해야 할 만한 사안이 적지 않다. 집권 초기부터 고용과 해고를 수월하게 만들고, 친환경 에너지 정책의 일환으로 유류세 인상을 시도해 노조와 화물기사들의 저항을 불렀다. 정년을 연장하고 연금 수령 시점을 늦춘 연금개혁 역시 국민 70%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켰다. 여론을 수습하지 못하면 정권이 흔들릴 만한 이슈들이다.
▷‘트랙터 시위(농업개혁 반대)’ ‘노란조끼 시위(노동개혁 반대)’ ‘프라이팬 시위(연금개혁 반대)’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지만 대통령이 시위대와도 기꺼이 마주 앉는 게 프랑스의 민주주의다. 대통령이 불편해할 목소리는 경호원들 선에서 ‘입틀막’ 되는 한국과 다른 대목이다. 9일 대통령 기자회견이 열리긴 했지만 추가 질문 기회가 없어 토론을 못 하는 구조에선 소통을 기대하기 어렵다. 마크롱이 프랑스에서 20년 만에 나온 재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데는 대화를 통한 정면 돌파 전략이 한몫을 했다. 성공한 정치인이 되려면 까다롭고 날 선 질문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