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오자’서 세계적 작가 되기까지 지난달 타계 폴 오스터 자전 소설 ◇빵굽는 타자기/폴 오스터 지음·김석희 옮김/304쪽·1만5800원·열린책들
이호재 기자
문학 담당 기자로 젊은 작가들을 만나다 보면 ‘꿈의 가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좋은 학벌, 명석한 두뇌를 지닌 작가들이 생계 유지엔 상대적으로 소홀하기 때문이다. 한 30대 소설가는 “아직 부엌이 없는 반지하 방에 살고 있다”고 했다. 다른 30대 소설가는 “내가 정한 최소 생활비인 월 200만 원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닥치는 대로 한다”고 했다. 작가들이 작품을 위해 들이는 노력을 생각하면 최저임금은 ‘사치’처럼도 느껴진다.
소설가로 제대로 인정받기 전 그의 삶은 궁핍했다. 작품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번역을 해야 했다. 탐정소설을 써서 떼돈을 벌어보려고도 했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그는 카드놀이를 만들어 팔아볼 시도까지 했다. 그는 “기적 같은 역전을 꿈꿨다. 복권에 당첨돼 수백만 달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따위의 일확천금을 꿈꾸며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가 좌절한 건 노력에 비해 결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1982년 첫 장편소설 ‘스퀴즈 플레이’(열린책들)를 내놨지만 반응은 적었다. 걸핏하면 좌절감에 빠졌다. 인생의 낙오자라는 생각에서 늘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벌컥벌컥 술잔을 비우듯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 다니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낭만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가령 나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선언하고, 훌륭한 인생에 대한 일반 통념에 휩쓸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
그는 책에서 어떤 교훈을 남기지 않는다. ‘라떼는 말이야’처럼 고생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훌륭한 작가가 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두려움을 드러내는 대신 재치있는 농담과 빈정조의 어투 속에 그 두려움을 파묻어 버렸다”며 비겁함을 고백하기도 한다. 다만 책을 읽다 보면 ‘공짜 꿈’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하게 성공한 작가의 뒷모습엔 고난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난해 11월 국내에 장편소설 ‘4 3 2 1’(열린책들)이 출간될 당시 출판사를 통해 그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하지만 “몸이 많이 안 좋아 인터뷰가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6개월 뒤에 세상을 떠났지만, 만약 그와 인터뷰할 수 있다면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이 지불한 ‘꿈의 가격’은 얼마인가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