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도, 해외 취업도 앞으론 한층 어려워질지 모르겠습니다. 캐나다·호주 같은 ‘이민자의 나라’가 이주민을 위한 문을 빠르게 닫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 2년 간 이어진 전례 없는 ‘이민 붐’의 반작용인데요. 그 배경엔 공통적으로 심각한 주택난이 있습니다.
이민 문제와 관련해 딥다이브에선 네덜란드의 반이민 정서, 미국의 고용대박 소식을 전해드린 적 있죠. 어쩌다 보니 이민 이야기를 연속으로 전하게 되는데요. 이번엔 대이민 시대와 주택 위기를 들여다봅니다.
호주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이민전략 보고서’에 실린 이민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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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 순이민 절반으로 줄인다
가장 성공적인 다문화 국가. 호주가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타이틀이죠. 그도 그럴 게 호주는 2000년대 들어서만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2600만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였습니다. 호주는 오랫동안 새로 온 사람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나라였습니다.하지만 호주의 포용력은 이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팬데믹이 끝난 뒤 폭발적으로 이민자 유입이 급증했기 때문인데요. 지난해 6월까지 1년 동안의 호주 순이민자 수는 51만8000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죠. 수도인 캔버라 인구(약 40만명)보다 더 많은 외국인이 도착한 겁니다.
호주 시드니의 아파트 모습. 게티이미지
가파르게 오르는 호주의 임대료. 전국 평균 임대료가 주당 627달러를 기록했다. 2020년 초보다 50% 가까이 올랐다. 자료: 도메인
이어 새로운 조치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습니다. 기술이민과 관련해 점수 테스트 제도를 새로 도입하고(나이·영어능력·학력·경력을 종합해 점수화), 유학생 비자의 영어점수와 재정능력 기준을 높이는 겁니다.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저숙련 기술자나 초보 수준 강좌를 듣는 외국인 수강생은 이제 받지 않겠다는 거죠.
캐나다 : 임시 이주민 50만명 감축
동시에 임대료는 매우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3월 캐나다 임대료 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8.5%나 뛰었는데요. 무려 4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입니다. 2020년 2월 한 달에 1900캐나다달러였던 밴쿠버 원베드룸의 평균 임대료가 이젠 2700달러(약 270만원)로 치솟았습니다.
캐나다 엔비로닉스연구소의 이민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여주는 그래프. ‘캐나다로의 이민이 너무 많다’ 는 데에 동의하는 응답자 비율(초록색 선)이 2022년 27%에서 2023년 44%로 급증했다. 동시에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빨간색 선)은 69%에서 51%로 확 줄었다. 1977년부터 이어진 설문조사에서 이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이렇게 확 커진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이민에 대한 캐나다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음을 알 수 있다. 엔비로닉스연구소
새 정책에 따르면 이제 캐나다 기업은 왜 캐나다인이 아닌 비영주권자를 고용하는지 이유를 일일이 소명해야 합니다. 유학생은 최소 2만635달러(약 2060만원)을 보유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고요.
영국 : 부양가족 못 데려온다
영국이 호주·캐나다처럼 이민자 물결로 골치라는 건 좀 아이러니합니다. 이민을 억제하겠다며 EU에서 탈퇴(브렉시트)까지 했는데, 되레 2022년과 2023년 순이민자 수는 브렉시트 투표(2016년) 이전의 2배 가까이로 늘었기 때문인데요. EU 국가 대신 인도·나이지리아·중국(홍콩 포함) 출신 이민자가 급증했다고 하죠.올해 연말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민자 급증은 집권당에 큰 부담입니다. ‘지속 불가능한 대량 이민이 주택난을 악화시킨다’는 야당의 공격이 거센데요. 특히 지난해 임대료가 9.3%나 급등하면서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통계청의 인구 추정치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죠. 이런 추세대로 이민이 늘면 현재 6700만명인 영국 인구가 2026년에 7000만명, 2036년엔 7400만명으로 불어날 거란 전망입니다.
영국 런던 교외에 위치한 테라스 하우스. 게티이미지
이민과 집값 상관관계는?
캐나다 토론토의 야경. 게티이미지
임대료 급등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이게 다 이민자 때문’이란 말은 귀에 쏙쏙 박히기 마련입니다. 보통 이민 온 사람은 바로 집을 사기보다는 임차로 한동안 지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임대주택 수요를 자극하는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좀 따져봅시다. 지금 임대주택이 턱없이 부족한 결정적 원인이 정말 이민일까요. 이민을 막으면 이 지긋지긋한 주택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호주 학생숙소협의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임대 위기에서 유학생 역할에 대한 통념 깨기’)는 간단한 통계를 바탕으로 이런 주장을 반박합니다. 호주에서 임대료가 치솟고 공실률이 급감하기 시작한 건 코로나로 유학생 유입이 제로 수준까지 떨어졌던 2020년부터라는 거죠. 팬데믹 당시 국경을 폐쇄했던 호주가 이민자에 완전히 다시 문을 연 건 2022년. 그 2년 전부터 임대주택 위기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정부 규제, 건설비용 상승, 주택공급 지연, 공공임대 주택 부족, 높은 금리 등. 각종 요인으로 누적된 공급난이 주택위기의 진짜 원인으로 꼽히죠.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대부분 국가(한국 포함) 주택시장이 겪고 있는 공급부족 상황과 결국 원인은 같습니다.
호주의 임대주택 공실률(갈색 선)과 외국인 유학생 유입(빨간색 선)을 보여주는 그래프. 공실률은 2020년부터 떨어졌지만, 당시는 코로나 때문에 유학생 유입이 제로에 가까웠던 데다 기존 유학생마저 본국으로 돌아가던 시기다. 이주민 급증이 임대주택 위기를 촉발한 결정적 원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학생숙소협의회
또 이들 선진국의 문제 중 하나는 주택공급을 늘리고 싶어도 노동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겁니다. 주택난 타개를 위해 집을 더 지어야 하는데, 이민자 없이 어떻게 그 많은 집을 지을까요? 이 때문에 캐나다 정부는 기업의 외국인 근로자 채용을 제한하면서도 건설 부문은 예외로 인정했습니다. 반이민으로 주택난을 해결한다는 게 모순되는 이유이죠.
임대료와는 달리 이민자 급증이 이들 선진국 집값을 끌어올리진 않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호주에서 주택가격은 지난해 하락하다 다시 올라, 현재는 2022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고요. 캐나다·영국에선 2022년 정점과 비교해 집값이 오히려 하락한 상태입니다. 결국 이민보다는 금리가 집값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임을 알 수 있죠.
이민과 관련한 신화는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 이민이 정치 이슈가 되기 쉬운 이유다. 게티이미지
물론 그렇다 해도 ‘주택대란은 이민자 탓’이란 주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30년 넘게 이민을 연구한 헤인 더 하스 암스테르담대 교수는 이를 “전형적인 희생양 정치”라고 잘라 말하죠. 영국의 작가 케난 말릭이 가디언에 쓴 칼럼 한 대목을 전합니다. “영국 노동자들이 영국 주택을 갖지 못하는 것은 줄 서서 기다리는 이민자 때문이 아니라 당국이 충분한 주택을 건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민자들이 공공주택에 ‘홍수처럼’ 몰려들어 영국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한다는 건 정치인·전문가·학자들이 만들어낸 신화입니다.” 물론 신화란 원래 깨기가 매우 어려운 법입니다. By.딥다이브
‘이민 없인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 이민자는 싫다’는 심리. 솔직히 이해도 됩니다. 문제를 키우는 건 이를 이용해 본질(주택 정책 실패)을 은폐하는 정치인들일지도.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전례 없는 ‘이민 붐’을 겪던 캐나다, 호주, 영국이 이민자를 위한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세 나라는 공통적으로 역대급 이민자 유입과 엄청난 임대료 인상이 동시에 닥쳤는데요. 주택위기로 인해 이민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여론을 달래기 위해 서둘러 이민 줄이기에 나섰습니다. 비자를 내주는 기준을 대폭 올리거나, 부양가족을 데려오지 못하게 하는 새로운 정책이 시행됐습니다. ‘반이민’을 외쳐야 지지율이 올라가는 상황입니다.
-따져보면 주택위기의 진짜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이민 수요보다는 누적된 주택공급 부족이 결정적이죠. 이민을 틀어막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다 이민자 탓’이란 주장은 계속될 겁니다.
*이 기사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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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