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경 한양대병원 교수-구강암 김희상 씨 신장암 뒤 구강암, 10년 후 신장암 “다시 찾아온 ‘짓궂은 동무’라 생각… 의사 친구 확실히 믿고 치료 임해” 긍정적 자세가 암 극복에 큰 도움
태경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왼쪽)와 김희상 씨는 고교 동창이다. 태 교수는 다른 병원에서 구강암 수술 불가 판정을 받은 김 씨를 수술해 암을 제거했다. 김 씨는 “친구를 믿고 치료에 임한 게 완치 비결 같다”고 말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언젠가부터 잇몸이 붓기 시작했다. 흔한 잇몸 염증이려니 생각했다. 염증약을 먹는 것으로 치료를 끝냈다. 예상과 달리 잇몸 염증은 날이 갈수록 악화했다. 동네 치과에 갔다. 의사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의사는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제야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대형 치과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입안에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2017년 7월 이야기다. 당시 50대 후반이던 김희상 씨(65)의 구강암 투병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신장암 극복했는데 다시 구강암
당시 김 씨보다 먼저 그 소식을 들은 아내는 펑펑 울었더랬다. 김 씨도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했다. 그래도 절망하지는 않았다. 암 덩어리가 커서 신장암 병기(病期)는 3기에 가까웠지만 다행히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암이 있는 왼쪽 신장을 통째로 절제했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항암치료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2015년 김 씨는 신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암에서 해방되고 2년 만에 김 씨는 두 번째 암 진단을 받았다. 바로 구강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는 “이 암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아내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아내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김 씨가 충격을 받은 이유가 있다. 일단 병기가 4기였다. 입안 상태는 처참했다. 잇몸과 입천장에 암 덩어리가 붙어 있었고 잇몸뼈는 위쪽 전체가 거의 파괴돼 있었다. 암세포는 림프샘으로 전이된 상황. 대형 병원 의사조차도 “암이 너무 진행돼 수술은 어려우니 항암치료부터 시도해 보자”고 할 정도였다.
●친구 믿고 오른 수술대
김희상 씨
태경 교수
수술이 결정됐다는 소식에 김 씨는 누가 집도하느냐고 물었다. 태 교수는 자신이 직접 집도할 것이라 했다. 김 씨는 “그렇다면 믿고 수술대에 오르겠다”고 했다.
수술이 끝난 후 조직 검사를 진행했다. 미세한 암세포도 보이지 않았다. 태 교수는 “그 순간 수술 성공과 완치를 확신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후 김 씨는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다.
●10년 만에 재발한 신장암
의학적으로 수술 후 5년이 지나도 암이 발견되지 않으면 완치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김 씨는 2015년 신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같은 방식으로 2022년이 되면 구강암도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정말로 그렇게 될 것 같았다.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추적 검사를 했는데 암세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2년만 더 있으면 완치 판정을 받을 거라 여겼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2020년 폐에서 암이 발생했다. 태 교수와 김 씨 모두 가슴이 철렁했다. 구강암이 폐로 전이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태 교수는 “구강암이 원래 폐로 전이가 잘된다. 특히 악성 흑색종은 재발하는 일도 잦다. 이런 상황이면 생존율은 30%가 안 된다”고 했다.
조직 검사 결과 예상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미 완치 판정을 받은 신장암과 조직이 같았다. 신장암이 10년 만에 폐로 전이됐다는 뜻이다. 김 씨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한양대병원 흉부외과 의료진이 폐 일부를 절제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년 후인 2022년 12월, 제거했던 신장 부위에 암이 재발했다. 김 씨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 해당 부위 림프샘을 제거하는, 네 번째 암 수술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구강암은 재발하거나 전이되지 않았고, 이 무렵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김희상 씨의 재발한 신장암 수술을 담당한 박성열 한양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한양대병원 제공
박 교수는 “신장암의 경우 10∼20년 후에도 재발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다만 대부분 김 씨처럼 무증상이기 때문에 매년 추적 검사만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니까 신장암에 걸린 상태이긴 하지만 관리만 잘하면 수술이나 다른 치료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긍정적 자세로 의사와 소통하라”
몇 번 위기를 넘겼지만 김 씨는 되레 여유로워졌다. 10년 만에 신장암이 전이되고 재발했는데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단다. 김 씨는 “짓궂은 친구 하나가 다시 찾아온 거라 생각했다. 위기의식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병과 싸우면서 여유를 되찾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씨는 “수술 세 번을 무난히 견뎌냈고, 네 번째 면역 항암치료도 잘 이겨내고 있는데 무엇이든 못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게다가 든든한 의사 친구도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웃었다.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의사 말을 충실히 따르면서 치료에 전념하는 것만으로 이미 최선을 다했다는 것. 다음은 하늘의 뜻이란다.
태 교수는 “이 친구는 사람들과도 잘 사귀고 매사에 긍정적이다”라며 “이런 긍정적인 자세가 암 극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환자의 긍정적인 마음이다. 긍정적인 환자가 의사와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치료가 그만큼 더 수월해진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내 주치의가 고교 동창이라 그런지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또 비뇨의학과 진료를 받을 때도 그러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김 씨는 “의사 말을 듣지 않고 이상한 약물이나 음식을 먹는 경우가 주변에 더러 있는데, 쓸데없을 뿐 아니라 시간도 버리고 몸도 악화시킬 거라 생각한다. 그런 것을 철저히 배격했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이제 건강 관리에도 신경을 쓴다. 매일 1만 보 이상 걷는다. 물론 암에 걸리기 전에는 운동과 담을 쌓았었다. 이제는 운동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또 매사에 조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술을 마시던 사람이 거의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김 씨는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