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수 산업2부 기자
“세 쌍둥이가 크고 있는데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본청약이 왜 늦어지는지, 언제까지 지연될지는 설명을 해줘야죠.”(서울 동작구 수방사 부지 사전청약 당첨자 박모 씨)
올해 본청약 예정인 공공분양 사전청약 단지 1만8000채가 지연되고 있다는 기사(본보 2024년 4월 10일자 A1·8면 참조)가 보도된 뒤 여러 사전청약 당첨자들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박 씨가 당첨됐다는 수방사 부지는 지난해 경쟁률 283 대 1로 역대 공공분양 중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곳이다. 일반공급 당첨자는 청약통장 납입액에 따라 결정되는데, 커트라인이 무려 2550만 원이었다. 납입액이 월 10만 원까지만 인정되니 당첨자들은 최소 21년 3개월 동안 꼬박꼬박 돈을 넣은 셈이다.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가장 분노한 건 지연 사실이나 사유를 제때 통보하지 않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정부의 태도였다. LH와 정부는 본청약 연기를 한두 달 전에야 개별 통보하고 있다. LH는 “내부 지침상 두 달 전에만 알리면 된다”고 설명한다. 연기가 될지 안 될지를 당첨자들은 ‘그때 가 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불안감을 견디지 못한 이들로선 전화기를 드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몇 번의 뺑뺑이를 거쳐 운 좋게 담당자와 통화하더라도 “확실하지 않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사전청약은 2021년 7월 집값 급등기 수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재도입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보금자리주택에서 벌어졌던 지연 사태가 없도록 하겠다는 호언장담과 함께였다. 여러 문제점이 지적됐는데도 제도를 보완한 흔적은 많지 않다. 10여 년 전과 똑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라고 다르지 않다. 국정과제인 ‘공공분양 50만 채’ 공급을 달성하기 위해 사전청약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와 올해 초 사전청약 경쟁률 결과를 홍보하는 자료를 4차례 배포했다. 지난해 6월에는 ‘뉴:홈 사전청약’ 확대 계획도 발표했다. 발표 자료엔 “순조롭게 공급이 진행되고 있다”고 씌어 있다. 결국 공급 숫자에 급급한 나머지 훗날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어떤 고충을 겪게 될지는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부동산 정책은 신뢰가 생명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정책을 믿지 못하면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사전청약) 지연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소한 당첨자들이 당첨 유지 여부를 미리 판단할 수 있게 정보를 적시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부터 실천했으면 한다. 공공주택에서 이런 식의 혼란이 계속된다면 주택 정책 전반의 신뢰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최동수 산업2부 기자 firefl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