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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각서밖에 안 써봤다는 분도 임종 앞두곤 편지에 진심 담아”[월요 초대석]

입력 | 2024-05-12 23:15:00

말기 암환자 257명 속마음 전해온 고주미 사회복지사
서울대병원 환자들 ‘속터뷰’한 뒤 편지로 정리해 가족에게 전해
엄했던 아버지, 아들에게 남긴 말 “칭찬 그때그때 못한 거 미안”
부인 “내게 왜 그리 모질었나”…남편 “너무 미안했다. 날 용서해”
통증관리 못지않게 정서적 지지 잘 받아야 남은 삶 주체적 준비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에서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11년간 ‘내 마음의 인터뷰’를 해온 고주미 사회복지사가 8일 서울 광화문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회복지학 박사인 그는 말기 환자 257명과 교감한 경험 등을 토대로 3월 ‘말기 암 환자의 자문형 호스피스 이용 경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여기 제 이름 보이시죠? 병원 와서 그동안 많이 참으신 거 알아요. 저한테는 눈치 보거나 참지 말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랑 얘기하다 신경질 나거나 피곤하면 손만 들어주시고요.” 사회복지사 고주미 씨는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에서 일하며 말기 암 환자들과 만날 때면 이런 인사를 건넨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호스피스 등록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를 편지로 정리해 가족들에게 전하는 게 주미 씨의 일이다. ‘내 마음의 인터뷰’라는 프로그램을 2013년부터 시작해 11년간 257명의 말기 환자를 만났다. “저는 ‘환자분’이란 호칭 대신 ‘○○님’이라고 이름을 불러요. 환자라는 정체성 말고, 당신이 어떤 사람이고, 지금 마음이 어떤지를 물어요. 의사, 간호사들은 그분들에게 더 이상 해줄 얘기가 별로 없고, 가족들도 많이 지쳤거나 속내를 털어놓기 힘든 경우가 많거든요.” 주미 씨가 편지를 함께 써 보자고 하면 환자들 반응이 제각각이다. “저 이제 죽어요?” “이거 유서 쓰는 건가요?” “편지라곤 각서밖에 안 써봐서…” 등등. 하지만 편지를 쓰고 나면 “누구도 나한테 이런 걸 물어오지 않았다” “정리하느라 손이 얼마나 아팠어”라며 고마워하는 이들이 많다.》




● 임종을 앞두고서야 깨닫는 것들

주미 씨는 후두암 말기여서 말을 할 수 없는 40대 아버지를 만난 날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목과 상체 곳곳에 호스가 달려 있던 그는 주미 씨를 보고 고개만 간신히 끄덕였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의 아들은 병실 밖을 서성였다. 평소 엄했던 아버지를 어려워한다고 했다.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아버지는 눈을 반짝이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쓸 수는 있다는 뜻인 듯했다. 주미 씨가 수첩을 내밀자 그는 겨우 알아볼 만하게 몇 글자를 적었다. ‘칭찬 그때그때 못 한 거 미안하다.’

“그분한테 다음 질문으로 ‘지금 두려운 게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수첩에 크게 ×자를 그리더니 밑줄을 두 줄이나 긋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편지 제목에 ‘나는 두렵지 않다’라고 써서 보여드렸는데 그 제목에 줄을 쓱 긋고 다시 쓰셨어요.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라고.” 아버지는 주미 씨와 만난 지 나흘 만에 숨을 거뒀다.

말기 상태인데 수용을 거부하는 환자가 있다기에 만나러 갔다가 전 직장 동료를 마주한 적도 있다. 고속 승진을 거듭했던 그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50대인 그에겐 사춘기 아들 둘이 있었다. 주미 씨가 “애들에게 전할 성공 법칙 3개만 알려 달라”고 했더니 그는 5개를 줄줄이 읊었다. ‘남한테 뭐 물어볼 때 무턱대고 묻지 말고 너만의 대답을 갖고 물어볼 것. 가족끼리 스킨십을 자주 할 것! 그리고 여행 많이 가라. 특히 엄마 모시고 자주 가라.’

주미 씨가 며칠 뒤 그를 다시 찾았을 땐 병세가 악화돼 의료진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주미 씨, 미안. 오늘은 못 하겠어.” 그는 그날 숨을 거뒀다.

죽음에 임박해서야 깨닫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고 주미 씨는 말했다. “여행 많이 해둘걸” “내가 나를 좀 위할걸” “바쁘게 사는 게 좋은 건 줄 알았는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40대 초반의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쓴 편지는 “한 편의 시 같았다”고 주미 씨는 말했다. 그는 국어교사였다. ‘아빠는 우리 아들이 변해가는 계절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여유와 낭만이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아빠가 조금만 힘내서 집 지붕에서 뚜두둑 뚜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도 같이 듣고 싶네. 사랑한다는 말이 아까울 정도의 아들, 사랑한다.(7일 후 임종)’

● 얼굴 보고는 속 얘기 못 터놓는 가족들


한 달째 의식불명인 60대 남편에게 매일같이 말을 거는 부인이 있었다.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땐 보호자와 편지를 쓰기도 한다. 그 역시 남편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날 위해서라도 기운 내라고 했더니 당신이 그랬잖아. 악착같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그 말이 섭섭하더라. 왜 내 생각은 안 하는 거야.(눈물) 그런데 얼마나 힘들면 그랬겠어.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지만 여전히 섭섭해. 그래도 여보, 당신이 하늘나라에서 날 기다려줄 것 같아서 좋아. 날 꼭 기다려.’

부인은 이 편지를 남편의 귓가에 읽어줬다. 그 후 4일 뒤 남편은 사망했다. 마치 부인이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늘로 떠난 듯했다.

대장암 말기인 한 70대 남성은 주미 씨에게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었다. “부인에게 편지 좀 쓸까요” 한 마디에 담담하게 독백을 했다.

‘여기 온지 보름 만에 내가 하반신을 못 써. 하늘이 나를 부르나 본데 내일이라도 부르면 가지 뭐(눈물). 당신은 나 없이 많은 시간을… 힘들어서 어떻게 해.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더울 텐데. 그래도 당신을 사랑해주는 손주들이 있으니 걔내들 공책이라도 하나 사주는 재미로 사시구려. 우리 지금은 떨어질지언정… 만납시다, 다시.’

부부라고 다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다. 임종 때까지 갈등을 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말기 암 80대 남편에게 받은 상처가 컸던 부인은 애증의 마음을 편지로 옮겼다.

‘내가 병날 정도로 나한테 모질게 한 거, 한 번만이라도 왜 그랬는지, 안 미안한지 궁금하지만 이렇게 누워 있는데 무슨 말을 할까 싶기도 해. 다음 생에는 남 괴롭히지 말고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

꼼짝 못 하고 누워 주미 씨가 읽어주는 편지를 듣던 남편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부인에게 전해 달라며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너무 미안했다. 날 용서해라.”

주미 씨는 말했다. “가족들끼리 얼굴 보고 못 하는 얘기가 많잖아요. 편지가 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편지를 쓰다 보면 ‘끝까지 나를 부탁한다’고 속마음을 표현하거나 ‘수목장으로 해 달라’는 현실적인 내용까지 전하게 돼요.”

● 얼마 안 남은 삶을 즐겁게 산다는 건


하루는 주미 씨가 유방암 말기인 50대 여성을 만나러 병실에 들어설 때였다. 주치의와 전공의 3, 4명이 환자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저 괜찮아요. 선생님들 정말 최선을 다하셨잖아요.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몇몇 전공의들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주미 씨는 환자의 대학생 외동딸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의연해서인지 애써 두려움을 억누르는 듯 보였다. 주미 씨는 딸과 먼저 편지를 썼다.

‘엄마 늙을 때까지 내가 옆에 있을 줄 알고 여유 부린 건데, 이제 해줄 수 있는 나이인데…. 엄마가 울면 같이 울 텐데 엄마가 안 우니까 나도 못 울고 있어.(미소) 뭐든 엄마랑 같이 했었는데 어떻게 될까 그런 게 막막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 엄마의 영원한 베이비, ○○가.’(5일 후 임종)

주미 씨가 만난 이들 중에는 20, 30대가 적지 않다. 젊어도 성찰이 깊고 자기표현을 잘하는 환자가 많다고 한다. 혈액암 말기 20대 여성이 쌍둥이 동생에게 쓴 편지다.

‘쌍둥이 내 동생 보고 싶어요. 나랑 똑같이 생겼어요. 내가 더 예뻐요.(미소) 아프기 전에는 많이 싸웠죠. 아프고 나서는 얼마나 잘해주던지.(울음) ○○아, 내 통장 비밀번호는 통장서랍 안에 다 있다. 그리고 이 말 하면 너 울 거 같은데, 나는 네가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미소) ○○이∼ 귀여워!’

자궁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그보다 한 달 넘게 살아 있는 60대 여성도 있었다. 가족들은 감사해했지만 정작 그는 고통스러워했다. 극도의 통증 때문에 휠체어에 아슬아슬 걸터앉은 채로 주미 씨를 맞았다. “지루하고 우울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오늘밤은 어떻게 지내려나, 내일은 또 어떠려나 생각뿐. 삶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즐겁게 산다는 건 뭘까. 그런 것에 대한 모델링이 없어서 더 힘들다.’

주미 씨는 며칠 뒤 그를 다시 찾아 이 편지를 읽어줬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뭔가에 북받친 듯 흐느끼기 시작했다. “편지 내용이 불편해서 우는 건가 싶어 당황했는데 환자분이 제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나보다 나를 더 잘 표현해줘 고맙다. 나도 모르는 대답이 내 안에 있었다’라고요. 저는 그분 말을 그대로 옮겼을 뿐인데 경청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 같아요.”

● 장지 가는 버스에서 발견한 엄마 편지


말기 환자들은 생명이 언제 멎을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특히 힘들어한다. 편지 쓰기는 이들이 불안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도록 돕는 작업이다. 주미 씨는 “환자들은 종일 누워 지내며 대소변도 못 가리는 경우가 많아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기 쉬운데 편지를 주고받으며 여전히 사랑받고 중요한 사람이란 걸 실감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자존감이 회복돼야 남은 삶을 주체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

“호스피스 치료는 통증 관리 못지않게 정서적 지지가 중요해요. 요즘 겨울이면 버스 정류장에 ‘엉따(엉덩이가 따뜻해지는)’ 의자가 있는데 버스가 올 때까지 편하게 기다리면 좋잖아요. 호스피스 역시 환자가 생의 종점까지 중심을 잡도록 해주는 거죠. 다만 말기 환자 중 호스피스 혜택을 받는 분이 20%대이고, 인력도 부족해서 서울대병원마저 호스피스가 필요한 분들 중 실제 의뢰되는 비율이 3분의 1 정도인 걸로 내부에선 보고 있어요. 특히 시스템은 없고 개인의 노력에만 의존하는 게 문제입니다.”

폐암으로 세상을 뜬 70대 여성의 딸이 주미 씨에게 반가운 연락을 해온 적이 있다. 그 환자는 주미 씨와 함께 쓴 편지를 딸에게 직접 건네려 했지만 미처 전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그런데 딸이 장의버스를 타고 장지로 가던 길에 어머니 가방을 열었다가 고이 접어둔 분홍색 편지를 발견한 것이다. “따님이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들고 가족들에게 그 편지를 읽어줬대요. 엄마를 보내드리는 데 편지가 뜻밖의 도움이 됐다고 해요.”

주미 씨는 이 일의 보람을 설명하며 한 30대 환자의 편지를 인용했다. “‘병원엔 화장실 말고는 거울이 없다. 나 자신을 바라볼 기회가 없다. 제3자의 시선으로 나에 대해 얘기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대목이 있어요. 환자가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일인 것 같아요.”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