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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성열]부실 검증 막으려면, 민정-법무부 교통정리부터

입력 | 2024-05-13 23:12:00

유성열 사회부 차장


“탈탈 털어도 탈탈 털 수가 없는 게 인사검증이죠.”

공직기강 업무에 정통한 전직 청와대 행정관은 문재인 정부 당시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실패 사례가 이어지자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사실상 ‘사찰’에 준하는 검증을 총괄하면서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까지 총동원해도 한 인물의 모든 ‘서사’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인사검증 실패는 역대 정부 내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고, 이명박(17명), 박근혜(10명), 문재인(34명) 전 대통령 모두 국회가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한 인사를 반복해서 임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취임과 동시에 민정수석실을 없애고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인사검증을 맡겼을 때,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교차했다. 법무부가 인사검증을 하는 게 적절하냐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미국이 그렇게 한다”고 답했다. 이어 “(대통령실은) 공직자의 비위 정보 수집하는 건 안 한다”면서 과거 정부마다 불거졌던 민정수석실의 ‘사찰 논란’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기대감을 가졌던 이유는 윤 대통령이 자신 있게 모델로 제시한 미국은 인사검증의 역할 분담이 철저해서다. 미국의 인사검증 시스템은 공직후보자가 백악관의 사전 검증을 통과한 뒤 각종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출하면, 법무부 산하 연방수사국(FBI)이 이를 넘겨받아 탐문하는 구조다. FBI가 가족과 친척, 이웃과 직장 동료 등을 상대로 교차검증을 한 다음 백악관에 보고하면 최종 판단은 백악관이 내린다. 이 과정에서 FBI는 적합, 부적합 등의 판단이나 의견은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검증은 FBI가 하지만 백악관이 인사검증을 주도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철저하게 역할이 분담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감은 결국 현실화됐다. 윤 대통령이 2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한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하루 만에 물러났고,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비상장주식을 재산신고에서 누락한 의혹 등으로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인사검증 부실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법무부는 “인사검증 자료를 수집해서 대통령실에 넘기는 역할만 수행한다”고 해명해 왔다. 미국처럼 최종 판단은 대통령실이 내린다는 설명이었지만, 민정수석이 없는 대통령실이 최종 판단을 어떻게 내리는지, 법무부가 이 과정에 정말로 개입하지 않았는지 등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인사검증 부실의 책임을 대통령실과 법무부 중 누가 질 것인지도 불분명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7일 “민심 청취 기능이 너무 취약했다”며 민정수석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민정수석실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인사검증을 법무부와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앞으로도 변화가 없을 거란 입장이지만, ‘왕수석’이라 불리는 민정수석이 부활한 상황에서 인사검증 역시 대통령실로 무게추가 쏠릴 거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실은 법무부와 인사검증에 대한 ‘교통정리’부터 확실히 한 다음 국민에게 상세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부실한 인사검증이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일단 책임소재부터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