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기업 해외자산 지키는 게 국력 네이버, 日정부 압박에 지분 매각땐 韓정부 ‘경제 오점’으로 남게 될수도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필자는 대통령 지지율 조사 전수를 모아 조사업체별 경향성을 보정한 지지율을 추정하고 있는데 이달 4일을 기준으로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전화면접 조사만 보면 25.7%다. 4월 2주 차 이후 3주 이상 20%대 지지율이 계속되고 있다.
뭐가 문제일까. 모두가 지적하는 ‘소통 부족’은 사실 실체가 불분명하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기획한 ‘도어 스테핑’ 당시에도 30%대가 무너졌다. ‘소통’의 대명사 노무현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을 이어가다 역대급 표차로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에 자리를 내줬다.
진짜 문제는 바로 경제다. 특히 보수 정부에는 그렇다. 진보는 ‘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다. ‘복지’라는 달콤한 약속도 함께다. 솔직히 ‘자유경쟁’을 내건 보수가 이기기 어려운 게임이다. 필자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실시한 설문 조사와 월드밸류서베이(World Value Survey)를 문항반응이론(Item Response Theory)으로 분석하여 유권자들의 이념 성향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큰 정부 △복지 확대로 요약되는 ‘평등주의’ 성향이 비교국 중 가장 강했다. 결국 보수는 ‘경제’에서마저 우위를 인정 못 받으면 설 곳이 없다. 산업을 키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세수를 늘려서 복지도 제공하는 선순환을 이뤄내야 하는 것은 보수의 숙명이다.
정부는 첫 번째 행정지도 후 무려 한 달이 지난 지난달 27일에야 외교부가 “네이버 입장 확인 후 필요하면 일본 측과도 소통”, 2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이 필요한 경우 제공해 나갈 예정” 등 원론적이고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이달 3일 “일본 정부가 라인 강탈 의도를 노골화하는데 윤 정부는 손을 놓고 일본의 눈치만 보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KAIST 교수 출신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에게 이슈를 선점당하고도 일주일이나 지난 10일에야 과기정통부 2차관이 나서 유감 표명을 했다. 그것도 “일본의 행정지도가 지분 매각 압박으로 ‘인식’되는 점에 유감”이라는 과도하게 조심스러운 표현으로 말이다. 과기정통부가 아닌 외교통상부 차관의 논평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늑장 대응의 원인이 무엇일까. 외교 전문가들은 과도하게 한일 관계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지만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필자의 렌즈로 보면 보수 진영이 네이버에 가져온 오랜 불만이 일조하지 않았는지 의심이 든다.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네이버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며 비난해 왔다. 여당 입장에선 네이버 임원 출신 전직 언론인이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직행한 것도 불만이었을 것이다. 반면 언론인 출신 김의겸 민주당 의원 등도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하며 신문법 개정안 등 네이버의 편집을 완전히 제한하는 법안을 수차례 발의한 바 있다.
필자도 지난 10년간 수차례에 걸쳐 언론 기고문 등을 통해 네이버의 뉴스 유통 방식이 언론 생태계를 붕괴시켜 왔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이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네이버는 현재 그나마 유일하게 국제 경쟁력을 가진 국내 정보기술(IT) 기업이다. 네이버의 국내 영업 모델상 언론시장을 왜곡시킨 측면이 있지만 이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고쳐 나갈 일이다. 언론학자의 시각에서는 오히려 네이버가 해외시장 진출에 성공해야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국내 뉴스 유통을 통한 트래픽 유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어 언론 생태계 정상화도 가속화될 수 있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상공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의 기본이 무엇일까. 자국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자산을 지킬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국력이고 국격이다. 만약 네이버가 지분을 헐값에 매각하거나 동남아 시장을 잃게 된다면 이미 약화된 ‘경제=보수’라는 인식이 무너지고 윤 정부의 가장 큰 오점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