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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강유현]“시간이 보조금” 되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라

입력 | 2024-05-14 23:12:00

강유현 산업1부 차장


2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주민들은 용인시청 앞에서 ‘무조건 절대 반대’ 현수막이 달린 상여를 태웠다. 원삼면은 SK하이닉스가 120조 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지역이다. 집회에 참여한 지역 주민 200여 명은 “SK는 물러가라” 구호를 외쳤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12월 주민 대표와 하수도 정비, 청소년 육성 사업, 체육시설 설치 등 상생 협약을 체결해 이행 중이다. 그런데 최근 주민들은 팹(공장) 건설 현장의 식당과 카페 운영권, 팹 준공 후 공장 청소와 매점 운영 용역권 등을 추가로 요구하고 나섰다.

이미 팹 착공은 3년이나 미뤄진 상태다. 2019년 일반산업단지 조성 계획 발표 당시 목표했던 팹 착공 시점은 2022년이었다. 하지만 토지 보상, 용수 협상과 관련한 경기 여주시의 어깃장 등 각종 문제를 해결하느라 내년으로 미뤄졌다. 이제야 겨우 땅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회사는 주민들 반발로 일정이 또 지연될까 조마조마해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360조 원을 투자하기로 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어떨까.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처인구 이동읍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방적인 국가산업단지 지정을 철회하라는 주민들의 요구 속에 설명회는 무산됐다.

앞서 2월 정부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주 수원을 화천댐으로 정하자 강원도는 지방자치단체의 중요 자원을 가져다 쓰면서 상의도 없이 결정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간 댐 건설로 지자체가 피해를 입었는데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9일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지원과 관련해 “시간이 보조금”이라고 말했다. “전력과 용수, 기반 시설, 공장 건설 (등이) 속도감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를 풀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 두 곳의 모습을 보면 우려부터 든다.

한국은 이미 속도전에서 밀렸다. 동아일보와 산업연구원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대만에서 2021년 이후 발표된 반도체 관련 제조 설비 투자 규모를 집계한 결과, 총 753조 원의 프로젝트가 2030년을 기점으로 대부분 마무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5월 9일자 A1면). 한국은 2047년을 목표로 한 삼성과 SK의 반도체 클러스터 등 초장기 계획뿐인데, 이마저도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주요 국가 프로젝트가 주민들 반대로 난항을 겪는 것은 드물지 않다. 그렇다면 기업도 주민 반대 가능성에 대해 사전에 해결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투자가 이뤄지면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점을 설명해 주민들과 공감대를 넓히려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

과거 30년은 반도체 산업에서 동북아시아의 확장 국면이었다. 미국은 칩을 싸게 만들기 위해 동북아에 생산을 맡겼다. 하지만 코로나19 반도체 수급난과 미중 갈등을 계기로 상황은 달라졌다. ‘초고속 쩐의 전쟁’이 벌어지는 반도체 업계에서 속도전에서 실기하면 낙오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보조금이라는 말이 헛된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정부는 걸림돌을 치워 투자의 물꼬를 터주고 지자체들은 지역 주민 설득에 힘을 보태야 한다.




강유현 산업1부 차장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