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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우경임]‘연금 개혁’ 국회 아닌 대통령이 하면 된다

입력 | 2024-05-14 23:15:00

우경임 논설위원


국민연금 개혁안을 논의하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문을 닫은 셈이 됐다.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조급하게 하기보다 더 충실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언급했고 막판 여야 합의 가능성이 사라졌다.

1년 10개월 동안 공전을 거듭한 국회 연금특위는 무용론이 나올 정도다. 보험료율(내는 돈)을 13%까지 올리는 데는 합의했으나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3%로 올릴지, 45%로 올릴지를 두고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단 2%포인트 차이. 그래도 여야 의견이 이렇게 근접한 적이 없었다. 극적 타결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었지만 대통령 기자회견 이후 여야 협상이 중단됐다. 과거 연금 개혁 과정에선 정부가 엑셀을 밟고, 국회가 브레이크를 걸곤 했는데 이번엔 야당이 “재를 뿌렸다”고 반발했다.


개혁 구호만 있고, 의지는 안 보여


이제 연금 개혁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진의가 헷갈린다. 2022년 2월 여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대통령은 “정권 초기에 이걸(국민연금 개혁) 해야 한다”고 했고, 대선 공약으로는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해 연금 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지금껏 어느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비판 탓인지 기자회견에선 “임기 내 국회가 고르면 될 정도의 충분한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약속드렸고 지난해 10월 말 공약을 이행했다”고 했다. 24개 시나리오를 담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지칭한 것이라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통령의 발언 그대로 “6000쪽에 가까운, 책자로 30권 정도의 방대한 자료”일 뿐이었다. 역대 정부마다 연금 개혁이 실패한 것은 고양이 방울이 아니라,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사람이 없어서였다.

국회 연금특위에 참가한 한 전문가는 “이번 연금개혁만큼 온 우주가 응원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2018년 8월 문재인 정부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각각 ‘11%-45%’, ‘13%-40%’인 두 개의 초안을 내놓았다. 여론이 들끓었고 연금 개혁은 없던 일이 됐다. 역대 정부마다 이처럼 연금 개혁 실패가 반복되자 연금기금 재정 고갈에 대한 국민적 학습이 이뤄졌다. ‘더 내는 안’에 대한 저항도 줄었다. 야당과 노동계가 보험료율 4%포인트 인상에 동의한 것은 상당한 진전이다.


완벽한 개혁이냐, 신속한 개혁이냐


국회 연금특위안은 재정안정성 측면에서 분명 결함이 있다. 연금기금 소진 시점을 지금보다 8년 늦출 뿐이고, 재정 적자 감축 폭도 적다. 대통령이 우려한 대로 최소 70년을 끌고 갈 계획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국회에 사회적 합의를 의뢰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연금 개혁안을 제출하면 된다. 꺼져 가는 개혁의 불씨도 살릴 수 있다. 대통령 임기 내내 여소야대 정국일 텐데 다음 국회로 미룰 이유가 있나.

만약 정부안을 따로 낼 생각이 없다면, 남은 2주 동안 국회가 연금특위안을 합의해 처리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완벽한 개혁을 할 수 없다면 신속한 개혁이 차선이다. 이번에 보험료율을 13%로 올린다면 26년 만의 첫 인상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전부 은퇴하기 전에 보험료율을 올려야 연금 기금 적립액을 늘릴 수 있다. 이번에도 실기하면 선거 일정을 감안할 때 최소 2, 3년은 그냥 흘러갈 것이다.

윤 대통령은 14일 “개혁은 적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정부로선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 개혁이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는데 연금 개혁까지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부담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개혁 과제 중 연금 개혁만큼 진척된 과제는 없다. 이조차 결단을 망설인다면 다른 개혁은 정말 수사(修辭)로 끝나고 만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