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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은택]내일도 의료대란은 없다… ‘정부’와 ‘의사들’에 따르면

입력 | 2024-05-15 23:12:00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2월 20일 본격화된 전공의 병원 이탈이 세 달째인데 정부 발표에 따르면 병원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입원 환자는 평시와 유사한 수준”(3월 20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며 “의료 현장에 혼란은 없었다”(4월 26일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는 것이다. “진료 중단 등은 없을 것”(5월 3일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이라고도 했다.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만난 복지부 고위 관계자도 웃으며 “이 정도는 다 저희도 예상했다”고 말했다. 역시 정부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런데 환자들에게 물어보면 상황이 좀 다른 것 같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3월 초 뇌하수체 종양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던 환자는 수술이 무기한 연기됐다. 울산대병원에서 4월 17일 신장암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던 환자는 전날 입원을 준비하던 중 수술 취소 통보를 받았다. 4월 29일 서울대병원에서 비뇨기암 수술이 예정됐던 환자도 수술 사흘 전 취소를 통보받았다. “언제 수술받을 수 있냐”는 물음에 병원은 불확실하다고 답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자궁근종 수술을 3월 말에 받기로 했던 환자의 수술은 5월 초, 5월 말로 두 차례 연기됐다. 한림대병원에서 신장이식 수술 전 검사까지 마친 환자는 돌연 수술이 미뤄졌고 투석을 받으며 기약 없이 버티고 있다. 정부는 병원이 잘 돌아간다고 했는데 현장에선 수술이 미뤄지고 취소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 사례들은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사이 누군가 숨졌다. 3월 30일 충북 보은군에선 도랑에 빠진 33개월 여아가 병원 10곳에서 수용을 거부당하고 사망했다. 다음 날 경남 김해시에선 60대 대동맥박리 환자가 수술 병원을 못 찾아 숨졌다. 4월 10일 부산에선 14세, 10세 두 딸을 둔 엄마가 간 부전과 신장 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남편은 온라인에 “의료 파업으로 아내를 잃었다”는 글을 올렸다. 둘째 딸 생일날이었다.

그때마다 의사들은 “전공의 파업과 관계가 없다”, “애초에 살릴 수 없는 환자였다”고 했다. 의사가 없고 병상이 없어 환자가 죽지만 절대 의료 공백 탓은 아니란 것이다. 정부가 만든 의사 집단행동 피해 신고 지원센터에 2400건 넘는 신고가 접수됐는데 의료 공백 연관성이 인정된 사건은 하나도 없다는 걸 보면 그 말이 맞는가 싶기도 하다. 의대 증원을 놓고 험악하게 충돌하는 정부와 의사들이 이 지점에선 묘하게 하는 말이 같다. ‘의료대란은 없다’, ‘의료대란으로 죽은 사람도 없다’.

그런데 아무 문제 없다는데 왜 자꾸 사람이 죽고 수술은 취소되나. 병원을 나간 전공의 1만3000명이 대부분 안 돌아왔는데 의료 체계는 잘 돌아가고 죽는 환자도 없다니 정말 의사가 부족하긴 한 건가. 그렇다면 1만3000명은 지금까지 유휴 인력이었단 뜻인가.

언제일지 모를 수술 날짜를 기다리는 보호자들, 병상을 찾아 헤매는 환자들은 오늘도 서로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그쪽도 취소됐나요.” “병상이 있는 곳 아시나요.” “언제쯤 수술을 받을 수 있을까요.”

어쨌든 대한민국 의료는 여전히 문제없다. 정부에 따르면 말이다. 전공의 이탈 탓에 숨진 환자도 없다. 의사들에 따르면 말이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