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금 5년새 2배로 늘어 382조원 지난해 증시 상승에 수익률도 올라 원금보장형, 선호도 높지만 저수익 “디폴트 옵션서 제외시켜 운용해야”
16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382조4000억 원으로 전년(335조9000억 원) 대비 46조5000억 원(13.8%) 증가했다. 5년 전인 2018년(190조 원)과 비교하면 약 2배 규모로 성장했다.
유형별로는 사전에 결정된 퇴직금을 받는 확정급여(DB)형의 규모가 205조3000억 원으로 가장 컸다. 근로자가 운용 주체가 되는 확정기여(DC·기업형 IRP 포함)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각각 101조4000억 원, 75조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다만 세제 혜택 확대, 퇴직급여 IRP 이전 등으로 IRP(+31.2%)가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하지만 퇴직연금 적립금 대부분은 여전히 원금이 보장되는 안전자산에 집중된 상태다. 지난해 말 대기성 자금을 포함한 원리금 보장형 적립금 규모는 333조3000억 원으로 전체의 87.2%에 달했다. 2022년 말(88.7%) 대비 비중이 소폭 줄었지만 쏠림 현상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은 예·적금, 금리확정형보험(GIC) 등으로 구성돼 저조한 퇴직연금 수익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의 5년, 10년간 연 환산 수익률은 각각 2.35%, 2.07%에 불과하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고 적극적인 운용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DC형과 IRP 가입자를 대상으로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를 시행했다. 디폴트옵션은 근로자가 본인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 상품을 결정하지 않더라도 사전에 정해둔 운용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다. 미국, 호주 등 주요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디폴트옵션을 도입해 연평균 6∼8%의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말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금의 약 90%가 초저위험 상품에 몰려 있다.
전문가들은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을 늘리기 위한 유인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로서는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손실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제외해 도입 취지를 살리는 등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