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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교제폭력 7년새 2배, 쉬쉬하다 디지털 범죄화

입력 | 2024-05-18 01:40:00

“엄마가 알까봐” 성범죄 신고못해
가해자는 “영상 유포” 협박 일쑤
전문가 “가해자 상담 의무화하고
매뉴얼 만들어 대응법 가르쳐야”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 김수연(가명) 양은 지난해 9월 고등학생 오빠와 만나기 시작했다. 교제 초부터 남자친구는 김 양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릴 사진을 자신이 직접 고를 정도로 간섭이 심했다. 자신과 함께 있지 않을 때 올라온 SNS 게시물을 추궁했고 이전 연애에 대해 캐묻거나 폭언과 폭력도 행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김 양이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까지 했다. 이런 ‘교제폭력’은 올 3월 김 양의 교사가 경찰에 신고할 때까지 반년 넘게 이어졌다.

최근 의대생 살인범 등 교제폭력 관련 강력 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 10대 청소년의 교제폭력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에 따르면 10대 교제폭력 가해자는 2016년 277명에서 2023년 534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경찰은 2022년부터 훈방·즉결심판 가해자를 제외하고 형사입건한 가해자만 통계를 내고 있어 실제 사건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 신고부터 막막한 10대 교제폭력

10대의 교제폭력은 ‘학생이 무슨 연애’라는 인식 탓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가 쉽지 않다. 김 양 사건도 다른 주제로 교사가 상담을 하다가 교제폭력 정황이 파악됐다.

박예림 한국여성의전화 정책팀장은 “어른에게 알릴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나에 대해 실망할까 봐’, ‘10대로서 하지 말아야 할 걸 한 것 같아서’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성범죄를 당하고도 부모에게 알려지는 걸 꺼려 신고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부모 등 법정대리인에게 의무적으로 통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인권보호단체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는 “부모에게 알리는 역할을 아동복지전담기관이나 변호사 등이 맡게 해 적절한 법률 조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신고를 머뭇거리는 사이 교제폭력이 ‘디지털 성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물리적인 폭력뿐 아니라 교제 당시 함께 찍은 사진이나 영상 등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당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함경진 서울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부장은 “(교제를 하며) 긴밀하고 가까운 ‘폐쇄적 관계’에서는 디지털 성범죄가 더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쉬쉬하지 말고 매뉴얼 만들어야”

10대 가해자는 형사처벌도 어렵다. 지속적인 스토킹 행위가 없다면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고, 교제 당시 이뤄진 폭력과 협박 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가해자가 10대라면 경찰이 훈방으로 처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남 거제에서 20세 남성이 동갑내기 전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에서도 이들이 고등학생 때부터 3년여 교제하는 동안 접수된 폭력 신고만 11건에 달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뜻을 밝혀 종결되거나 경찰에 ‘발생 보고’만 됐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도 상담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선 학교에서 학생 간 교제를 쉬쉬할 게 아니라 ‘데이트 폭력’ 관련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함 부장은 “뭘 잘못했는지 모르니까, 혹은 알면서도 ‘나한테 무슨 불이익이 있겠어’ 싶으니까 (폭력을) 계속하는 것”이라며 “청소년기에 제대로 된 상담과 교육이 이뤄져야 이후 성인이 돼서 일어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