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판결 후폭풍] 법원 “2000명 수치 직접 근거 미흡 의료계와 제대로된 논의 부족” 지적 정책 추진 과정 반성하고 개선해야
박성민·정책사회부
16일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가 의대 교수, 전공의, 의대생 등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각하한 것에 대해 정부에선 일제히 “환영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국민담화에서 “의료개혁을 가로막던 큰 산 하나를 넘었다. 국민들께 반가운 소식을 전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자평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의대생들이 학업에 복귀할 좋은 계기가 될 걸로 희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법원 결정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2월 6일 ‘2000명 증원’ 발표 후 발생한 100일간의 의정 갈등이 ‘정부의 승리로 끝났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대목이 곳곳에 보인다. 재판부는 집행정지 신청은 안 받아들였지만 정부의 2000명 증원의 근거와 결정 과정에 깊은 의구심을 드러냈다.
정부는 “2000명 증원 결정 및 배정 관련 자료를 제출해 달라”는 법원의 요청에 따라 10일 총 55건, 3414쪽 분량의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를 검토한 재판부는 “2000명 증원 결정은 2025학년도부터 2000명을 늘려야 2031년부터 매년 2000명씩, 합계 1만 명의 의사가 배출된다는 산술적 계산일 뿐 ‘2000명’이란 수치의 직접적 근거는 특별한 게 없어 보인다”고 했다.
법원은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 “공공복리에 해당한다”며 정부의 손을 들어주긴 했다. 그러나 법원이 지적한 부실한 논의 과정과 과학적 근거, 부작용 우려를 감안하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은 겨우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다.
국민과 환자들이 100일 동안 의료공백으로 고통받은 걸 감안하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책 추진 과정을 돌이켜보며 반성할 부분은 반성하고, 개선할 부분은 개선해야 한다. 내년도 의대 증원은 기정사실이 됐지만 언젠가 의사단체가 대화 테이블에 나와 내년도 이후에 대해 논의하자고 할 때 이번 같은 일이 반복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