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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마라톤도 참선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 위해 달립니다”

입력 | 2024-05-20 03:00:00

‘탁발마라톤’ 달리는 진오 스님
이주노동자 돕기 위해 달리기 시작… SNS에 달리기 상황 실시간 공유
2만여 km달려 5억 원 성금 모금
베트남 학교에 화장실 신축 목표… 오늘부터 미국 횡단 원정길 재개



올해 3월 경북 구미 금오산 일대에서 열린 3·1마라톤에 출전한 진오 스님이 완주한 뒤 미소를 짓고 있다. 스님은 “주 6일간 마라톤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대회에도 출전하며 컨디션 점검을 마쳤다. 이번 미국 횡단 도전은 목표 일자가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성공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진오 스님 제공


“참선(參禪)한다는 생각으로 달립니다.”

16일 경북 구미의 마하붓다사에서 만난 주지 진오 스님은 자신을 “달리는 스님”이라고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스님은 “불교에는 가부좌 자세로 내면적 한계에 도전하는 수행 방법인 좌선(坐禪)이 있다. 나는 마라톤이라는 주선(走禪)을 통해 이웃을 돕는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오 스님이 달리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무렵부터다. 공군 군법사로 복무하던 당시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다. 상심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의사의 권유로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한다.

진오 스님이 달리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달려온 수만 km 가운데 절반 이상은 타인을 위해 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2008년부터 한국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을 돕는 복지단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운영비가 턱없이 부족해 도움의 손길이 항상 절실한 상황이었다”며 “주변에 말로만 도움을 요구하기보다 직접 땀을 흘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훨씬 명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탁발마라톤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탁발마라톤은 1km를 달릴 때마다 100원을 기부받는 진오 스님만의 특별한 모금 방식이다.

진오 스님은 2011년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베트남 이주노동자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처음으로 탁발마라톤을 뛰었다. 당시 열린 ‘불교 108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108km를 완주했다. 진오 스님은 “주변을 살펴보면 달려야 할 이유가 참 많았다. 한국으로 시집와 남편의 사망이나 가정폭력, 이혼 등으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결혼이주 여성의 쉼터를 마련해 주기 위해 달렸고, 북한 이탈 무연고 청소년 그룹홈과 다문화 청소년 장학금 마련을 위해 뛰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탁발마라톤 도전을 밝히고 뛰는 과정과 완주 소식을 전하는 방식으로 전국 각지에서 성금을 받고 있다. 1km를 달릴 때마다 100원부터 크고 작은 액수의 금액이 전해져 왔는데 현재까지 2만여 km를 달려 5억 원을 모금해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었다고 한다.

진오 스님은 20일 새 원정길에 오른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했던 ‘미국 5225km 26개 주 횡단 마라톤’에서 남은 3300km를 완주하기 위해서다. 그는 “베트남의 한 시골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학교 화장실이 너무 열악해 충격을 받았다. 과거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의 만행을 기록한 증오비가 베트남 곳곳에 남아 있는 점도 놀라웠다”며 “불교에서 화장실은 마음의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으로 해우소라고 부른다. 베트남 국민들이 가진 감정의 앙금을 풀어 주고 미국과 우리가 가진 미안함의 근심을 푼다는 의미로 미국을 횡단하며 모은 성금으로 새 해우소를 지어 주기 위해 도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오 스님은 2020년 첫 도전 당시 아쉬움 속에 멈춰야 했던 오클라호마주에서부터 다시 달린다. 68일 동안 하루 50km를 달려 뉴욕주에 있는 유엔본부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다. 1963년생인 진오 스님은 이미 환갑을 넘겼지만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마라톤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까지 전국 각지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를 찾아다니며 컨디션을 점검하기도 했다.

진오 스님은 “이번 미국 횡단을 통해 7000만 원을 모금해 베트남 시골학교 10곳에 새 해우소를 지어 주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며 “미국인들에게 이번 도전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도움의 손길도 구하기 위해 최근까지 하루 1시간씩 영어 공부도 했다.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