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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 이후 파리의 레스토랑과 카페에 가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메뉴가 하나 있다. 독특한 모양과 씁쓸하면서 담백한 맛의 아스파라거스다. 어제도 일주일에 두 번 열리는 집 앞 장터를 지날 때 한 묶음씩 진열된 아스파라거스를 연이어 집어 드는 파리 사람들 모습을 보면서 새삼 아스파라거스의 계절이 왔구나 싶었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아스파라거스는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처음 심고 3년 후부터 먹을 수 있는데 첫 수확의 기다림이 길어서인지 가격이 꽤 비싸다.
남유럽이 원산지인 아스파라거스는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식용으로 쓰인 식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이후다 보니 아직 요리로 접하지 못한 사람이 많을 듯하다. 프랑스에서는 르네상스 시기부터 재배하기 시작했다. 대식가였던 루이 14세는 이 채소를 즐겨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막강한 권력으로 ‘태양왕’이란 별명이 붙었던 그가 정원사였던 장 드 라 캥티니에게 왕실 공급을 지시해 매해 3∼6월 사이 왕의 식탁에 자주 오르면서 ‘왕의 채소’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 역시 평소 흠모하던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여러 차례 아스파라거스를 이야기했을 정도로 이를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에서는 정력제, 최음제로도 알려져 중세 수도원에선 식용을 금지했다고 한다. 신혼여행 떠나기 전날 예비부부들에게는 이 채소를 세 끼 연속 권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17세기 프랑수아 피에르 드 라 바렌이라는 요리사가 쓴 ‘프랑스 요리’라는 책에 나온 아스파라거스 조리법은 간단해서 집에서도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단단하면서 윤기 나는 아스파라거스의 밑동을 필러로 긁어낸 후 적당한 양의 물과 소금을 넣은 냄비에서 익혀 물기를 빼고 질 좋은 버터와 식초, 소금, 육두구, 달걀노른자를 넣으면 완성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조리한 아스파라거스를 입안에 넣어 씹으면 씁쓸한 첫맛 다음 단맛이 이어지면서 입안 가득 싱그럽고 섬세한 매력이 퍼진다. 레스토랑에서 서비스하는 아스파라거스는 채소의 신선함에 마요네즈, 머스타드, 타르타르 소스 등이 더해져 더욱 훌륭한 메인 요리로 거듭난다.
5월에 파리를 방문한다면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은 음식이 아스파라거스다. 다만 관광지 주변에서 조금 벗어난 뒷골목의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즐길 것을 권한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