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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稅혜택 등 없는 맹탕 밸류업” 개미들 이달 2.7조 순매도

입력 | 2024-05-20 03:00:00

정부 증시 부양책 실효성 의문
日, 밸류업 최상위 기업 신용 등 우대… 올들어 닛케이 지수 16% 치솟아
韓 세액공제 등 유인책 흐지부지… 尹 “시장 실망감” 지적에 보완책 비상




직장인 신모 씨(38)는 이달 초 국내 증시에 투자하던 4000만 원을 빼고 미국 나스닥100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했다. 올해 2월 말 정부가 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지만 그는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는다. 신 씨는 “해외 주식은 양도소득세 부담이 커 투자를 꺼렸는데 코스피가 너무 지지부진해서 어쩔 수 없었다”며 “주변 친구들도 국내 주식은 워낙 변동성이 작아 눈길을 주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부의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이 구체적인 지원책 없이 기업의 자율 참여에만 의존하는 ‘맹탕 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여권의 총선 참패로 밸류업 대책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지는 데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여부 등을 두고 정책 혼란이 이어지면서 개인투자자들도 증시를 이탈하는 모양새다. 이달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시장의 실망감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발언하자 관련 부처에서는 밸류업 대책을 보완, 홍보하기 위해 비상 대응에 나서고 있다.

● 알맹이 없는 밸류업에 증시 떠나는 개미들

시장에서는 올해 2월 말 밸류업 정책이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기업 참여를 이끌 수 있는 구체적인 인센티브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정부도 이런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시장의 기대도 커져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배당 확대 기업 주주의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분리 과세하겠다”며 “배당,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노력을 늘린 기업에 대해선 법인세 세액공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달 2일 금융위원회가 공개한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 가이드라인(초안)에서 관련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모범 납세자 선정 우대가 거의 유일한 ‘당근’이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세제 혜택을 검토하겠다며 시간만 끌고 구체 방안을 확정하지 않는 것은 ‘간 보기’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법 개정이 필요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여당의 총선 참패 이후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과 중국 증시는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에만 닛케이225지수가 16% 가까이 오른 일본은 기업의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를 자율에 맡기면서도 적절한 당근과 채찍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 상장사에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꾸준히 압박하는 한편 증시 상장 유지 기준도 대폭 강화했다. 대신 최상위 부문인 ‘프라임 시장’에 속한 기업에는 은행 융자나 기업 신용등급 산정 시 혜택을 주는 등 인센티브도 확실히 부여했다. 증시가 장기 침체를 면치 못하던 중국 역시 주주환원 정책 강화와 미이행 시 페널티 부여를 핵심으로 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지난달 발표한 뒤 약 한 달 새 상하이종합지수가 4.5% 상승했다.

반면 한국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며 투자자들의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유가증권 시장에서 2조7500억 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들은 같은 기간 미국 주식을 대거 순매수했다.

● “기업 유인책 없으면 공염불”

금융당국은 밸류업 보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6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투자설명회(IR)를 개최했다. 이 원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 증시 밸류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가업승계 기업에 대한 상속세 완화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밸류업에 참여할 만한 유인책과 관련 제도를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페널티를 통한 기업 참여보다는 인센티브 강화로 기업을 유인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세제 혜택 등의 발표가 미뤄지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한 국내 증시 부양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