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 KPGA 최고령 우승
KPGA 최고령 우승 최경주 ‘축하 물세례’ 최경주가 19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SK텔레콤 오픈에서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역대 최고령 우승을 차지한 뒤 경기를 함께 치렀던 후배 선수들로부터 축하 물세례를 받고 있다. KPGA 제공
한국 남자 골프의 레전드 최경주가 자신의 54번째 생일인 19일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에서 아들, 조카뻘 선수들과 경쟁해 역대 최고령 우승 기록을 남긴 뒤 이렇게 말하면서 “앞으로의 내 삶도 확실히 변하게 할 우승”이라고 했다.
최경주는 19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 골프클럽 동·서코스(파71)에서 열린 SK텔레콤 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2차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박상현(41)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18번홀(파4)에서 치러진 2차 연장에서 박상현은 보기를 했고 최경주가 파를 지켜내며 길었던 승부를 끝냈다. 우승 상금은 2억6000만 원이다.
최경주는 경기 후 인터뷰 때 우승 소감을 묻자 “휴∼” 하고 숨을 길게 내뱉은 뒤 7초간 말을 잇지 못하다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최경주가 KPGA투어에서 정상을 차지한 건 42세이던 2012년 CJ인비테이셔널 이후 12년 만이다. 이날 우승으로 최경주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8승, 일본프로골프(JGTO)투어 2승 등 프로 통산 30승을 채웠다.
“젊은 선수들, 대회정복 마음 앞서” 오랜 노하우로 위기 뚫은 ‘탱크’
54세 최경주, KPGA 최고령 우승
“식단관리 중요… 술-커피 끊고
경기 없는 날에도 공 500개씩 쳐”
물 아닌 아일랜드에 공 떨어져… “상식적으로 이해 안되는 행운”
2차연장 드라마로 KPGA 17승… 소감 묻자 7초간 말 못잇고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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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섬에 선 최경주 “K.J.Choi 아일랜드로 이름 지었으면” 최경주(오른쪽)가 19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 골프클럽 18번홀(파4) 그린 왼쪽 워터해저드 안의 작은 아일랜드 위에 서서 캐디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최경주는 1차 연장전에서 우드로 친 두 번째 샷이 불행 중 다행으로 냇물이 아닌 이곳에 떨어지면서 승부를 2차 연장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KPGA 제공
우승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소감을 묻자 “휴∼” 하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인 최경주는 자리를 옮겨 진행된 기자회견에선 “기쁜데 지금의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며 “연장전에선 정말 우승하고 싶었다”며 “오늘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부담이 많았다. 그래서 더 간절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2일 미국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 투어 리전스 트래디션에서 공동 6위에 오른 최경주는 대회가 끝난 뒤 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14일 이번 대회장에 도착했다. 15일엔 이벤트 대회인 SK텔레콤 채리티 오픈에도 참가했다. 최경주는 키친에이드 시니어 PGA 챔피언십 출전을 위해 20일 미국으로 출국해 강행군을 이어간다.
SK텔레콤 오픈에서 최경주는 아들, 조카뻘 선수들과 경쟁했다. 추천 선수 자격으로 참가한 아마추어 박정훈, 서정민(이상 18) 등과는 36세 차이가 난다. 프로 선수 중 최연소인 정재현(19)도 35세 아래다. 이번 대회 최고령 선수인 최경주는 누구보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젊은 선수들과 경쟁해 정상을 밟았다. 이번 대회 1라운드 때는 초속 10m가 넘는 강한 바람이 불어 많은 선수가 어려움을 겪었다. 출전 선수 144명 중 5명만 이븐파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 최경주가 이들 5명 중 한 명이었다. 다양한 샷 구질로 바람에 대처한 그는 “사실 이 정도 바람은 가끔 접한다. 그럴 때일수록 경기를 편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최경주는 바람이 잦아든 2라운드에서 7언더파를 몰아 치며 승기를 잡았고, 3라운드에서도 2위와 5타 차 단독 선두를 유지했다.
기적의 섬에 선 최경주 “K.J.Choi 아일랜드로 이름 지었으면” 이날 54번째 생일을 맞은 최경주가 인터뷰장에서 우승 트로피 옆에 놓인 케이크 촛불을 끄는 모습. KPGA 제공
최경주는 “중년에 건강하게 지내려면 식단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코올이나 탄산처럼 몸에 독이 될 수 있는 건 안 하는 게 정답”이라며 “운동도 필수다. 나도 PGA 챔피언스 투어를 뛸 때는 카트 사용이 허용되지만 일부러 걷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유산소 운동과 스트레칭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대회 3시간 전에는 필드에 나와 스트레칭과 가벼운 웨이트트레이닝, 퍼팅 연습을 한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공을 약 500개씩 친다.
이날 최경주는 연장전에서 드라마 같은 승부 끝에 우승했다. 전날까지 2위에 5타나 앞서 무난한 우승이 예상됐던 최경주는 최종 라운드 정규 홀에서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최경주가 세 타를 잃은 사이 전날까지 7타나 뒤졌던 박상현이 네 타를 줄이면서 두 선수는 연장전에 들어갔다.
18번홀(파4·488m)에서 열린 연장 1차전에서 최경주는 5번 우드로 세컨드샷을 하자마자 고개를 떨궜다.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바람에 공이 그린 왼쪽 워터해저드 지역으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최경주는 “무조건 물에 빠진 줄 알았다. 그런데 갤러리들의 반응을 보고 ‘어, 잘하면 살았겠는데’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늘이 도운 듯 공은 냇물 한가운데 가로, 세로 2m 정도 크기의 아일랜드 잔디 위에 놓여 있었다. 최경주는 어프로치샷으로 공을 핀 1m에 붙인 뒤 파를 세이브하며 승부를 2차 연장으로 이어갔다. 최경주는 “물도 있고, 바위도 많은 그 지점에서 어떻게 공이 살아 있었는지 상식적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평생 잊지 못할 행운이었다. 그 아일랜드에 내 영어 이름을 따 ‘K. J. Choi 아일랜드’로 이름을 지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경주는 연장 2번째 홀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남은 힘을 다해 드라이버를 페어웨이 한가운데에 보냈다. 덕분에 5번 아이언으로 세컨드 온에 성공할 수 있었다. 최경주는 “오늘 경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다 해보자’는 각오로 임했다”고 했다.
서귀포=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