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2인자’이자 대미(對美) 강경파인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64)이 19일(현지 시간)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州) 산악 지대에서 헬기 추락으로 숨졌다. 이슬람 보수 성직자 출신으로 2021년 8월 집권한 라이시 대통령은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5)의 사후(死後)에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럼 만큼 그의 사망이 이란 핵합의 복원에 나선 미국과 전쟁 중인 중동 정세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모흐센 만수리 부통령은 20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해당 헬기에 동승했던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교장관 등 나머지 8명도 모두 사망했다. 구조에 나섰던 이란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는 헬기 추락 지점이 동아제르바이잔주의 주도 타브리즈에서 약 100㎞ 떨어진 타빌이라고 밝혔다. 라이시 대통령 일행은 노후 헬기를 타고 험준한 산악 지대를 비행하던 중 폭우와 안개 등 악천후를 만나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헬기 추락 현장 사진 - 이란 국영방송 SNS 갈무리
헬기 추락 현장 사진 - 이란 국영방송 SNS 갈무리
IRNA통신, 메흐르통신 등 이란 관영언론은 사망 소식을 전하며 라이시 대통령을 ‘순교자’로 칭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이 올 4월 최초로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지원하는 일을 주도했다. 이란 내에선 정치범 처형 등을 주도하고 히잡 의문사 반대 시위를 잔혹하게 탄압해 ‘테헤란의 도살자’로도 불렸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라이시는 3년간의 집권 동안 대리세력을 통한 서방 공격을 강화하며 이란을 더욱 명백한 미국의 적으로 만들었다”면서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중동 안팎에 불확실성을 부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