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민주정은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는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무자비한 폭군이라기보다는 교묘한 독재자였다. 문명을 발전시키는 제1의 동인은 욕구다. 민주주의는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욕구가 공존하면서 터져나오게 하는 데 최대의 장점이자 존재 가치가 있다. 반면에 욕구와 갈등이 조정되지 않고 서로 반목하고 위협하게 되면 강제적인 중재론이 인기를 얻게 된다. 민주주의의 보루였던 아테네도 민주정이 몰락하고 참주정이 대두하는데 그 주역이 페이시스트라토스였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죽자 두 아들이 권력을 계승했다. 형 히피아스는 대중의 욕구를 잘 알았고, 능숙하게 다뤘다. 독재가 탄탄해져 갔다. 여기에 페르시아와의 전쟁의 위협이 커져 가는 것도 참주정의 안정에 한몫했다.
민주정 지지자들이 무력감을 느끼던 기원전 514년, 도시 축제 중에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이란 두 청년이 동생 히파르코스를 암살했다. 암살의 이유는 독재에 대한 응징이란 설도 있고, 개인적인 원한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아테네의 민주정 지지자들은 이 의거를 찬양했고, 두 청년의 동상을 제작해서 광장에 세웠다. 이 동상은 어느 때인가 유실되었다. 현재 로마 시대의 복제품이 나폴리 박물관에 있다.
정치인들의 무책임, 선동, 포퓰리즘도 선을 넘고 있다. 온갖 사람이 대립과 분노를 조장하고, 선동당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카타르시스인 양 행동하며 부와 명예를 누린다. 테러는 해결책이 아니다. 진정한 해결책은 대중이 깨어나야 나온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