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인공지능(AI) 정상회의’가 열린다. 작년 11월 영국 블레츨리 파크에서 28개국 대표, 기업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AI 안전성 정상회의’의 후속 회의다. 한국, 영국 정부가 공동 개최하는 서울 회의에선 주요국 정상과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화상통화 등을 통해 AI가 가져올 미래에 관한 의견을 개진할 예정이다.
‘AI 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에서 AI 규범을 논의하는 회의가 열리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정작 이 행사를 주도하는 한국은 AI 산업 발전의 제도적 기초인 ‘AI 기본법’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초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AI 기본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이달 말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폐기될 예정이다.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산업 육성이 먼저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반면 주요국들의 제도 정비에는 속도가 붙었다. 유럽의회는 올해 3월 AI 개발 기업이 지켜야 할 의무를 규정한 법안을 최초로 통과시켰다. 미국은 2020년 ‘국가 AI이니셔티브법’을 제정해 2조 원 넘는 돈을 기업에 지원하고 있고, 지난주엔 AI 도입 기업이 근로자 보호를 위해 지켜야 할 내용을 행정명령으로 발표했다. 중국도 작년에 ‘AI 윤리 거버넌스’ 지침을 마련했다.
기업의 AI 투자 가이드라인이 될 기본법조차 못 만드는 현실은 한국의 미래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법이 표류하는 사이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 부처들이 규제 주도권을 잡겠다며 경쟁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정부와 정치권은 AI 산업의 진흥과 규제 양면에서 적절하게 균형이 잡힌 기본법을 제정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