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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방폐장법’ 폐기 수순… 2030년 원전가동 차질 우려

입력 | 2024-05-21 03:00:00

21대 국회 종료 앞, 관련 일정 취소
22대로 넘어가면 원점서 재논의
국내엔 고준위 처리시설 아직 없어
설치 일정 미뤄지면 원전 멈춰야




원자력발전의 연료로 사용된 사용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을 짓기 위한 특별법이 21대 국회에서도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가 약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특별법 통과를 위한 절차가 줄줄이 취소된 데다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 이어 이번 국회에서도 특별법 통과가 어려워지면서 중장기 전력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여야 냉각되며 고준위 특별법 논의 중단”

20일 국회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여야 의원들은 이날 법안소위, 21일 전체회의 등을 거쳐 고준위 특별법 본회의 회부를 논의할 계획이었지만 관련 일정이 모두 취소됐다. 앞서 이들은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 용량 등 관련 쟁점에 대부분 합의하고 21대 국회 임기 내 통과를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 단독 처리 등으로 여야 분위기가 냉각되며 관련 논의가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관계자는 “여야 지도부가 막판 합의를 통해 속도를 낼 수도 있지만 현재는 관련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했다.

고준위 특별법은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 및 관리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높은 열과 방사능을 배출하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 저장해야 한다. 원전 내부에 임시로 저장했다가 이후 원전 외부 중간 저장 시설, 영구 처분 시설 순으로 옮겨 보관해야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저장 및 처분 시설이 없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 및 처분 시설은 1980년대부터 아홉 차례에 걸쳐 부지 선정이 시도됐지만 주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후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 특별법을 제정해 부지 선정 절차와 유치 지역 지원 등을 제도화하고자 했지만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 시설은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한울(2031년), 고리(2032년) 원전 등이 차례로 가득 찬다. 저장시설 건설이 미뤄지면 사용후 핵연료를 둘 곳이 없어 원전을 멈춰야 할 수 있다. 대만에선 2021년 궈성원전 1호기가 저장 시설이 포화돼 당초 계획보다 약 6개월 이른 시점에 조기 폐쇄되기도 했다. 한 원전 부품업체 대표는 “고준위 특별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전 정부에서 탈원전을 추진할 때처럼 원전 산업이 전반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 “22대 국회 넘어가면 원점서 재논의”

고준위 특별법 관련 논의가 22대 국회로 넘어가면 21대 여야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이뤄졌던 합의가 이어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국회 관계자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 용량 등 대부분 쟁점에서 산자위 위원들 간 합의가 이뤄졌는데 22대 국회로 넘어가면 새로운 위원들끼리 원점에서 다시 합의를 해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다시 국회 본회의를 넘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부 탈핵 단체가 원전 확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특별 법안을 22대 국회 발의를 목표로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져 논의가 더욱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시설 내 저장 용량을 최소한으로 제한할 경우 원전 신규 건설이나 기존 원전 계속운전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며 “탈핵 단체와 야당이 손잡고 이 같은 법안을 발의하면 원전 확대 방침을 가진 정부, 여당과의 합의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