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구리경찰서 교통조사팀장 장남익 경감(55). 소리꾼으로서 요양원, 경로당 등에서 민요 공연을 통해 봉사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소리꾼 장남익 씨(55)는 요양원에서 노래 한 가락을 부르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꽹과리와 함께 장구를 치기도 하고 “얼씨구”하며 망가진 표정을 짓자, 어르신들이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장 씨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요양원과 경로원 등에서 민요 공연으로 어르신들에게 큰 기쁨을 전달해왔다.
공연이 끝난 뒤 장 씨는 본연의 업무를 하기 위해 제복을 입는다. 장 씨는 소리꾼이자 30년 넘게 경찰 업무를 착실히 수행해온 경기도 구리경찰서 교통조사팀장이다. 제복을 입으면 장남익 경감으로 돌아간다.
요양원에서 홀로 공연하는 장남익 경감. 사진=본인 제공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 계기로 ‘소리’ 배워
노인복지센터에서 국악 봉사단 놀패 단원들과 민요 공연을 하는 장남익 경감의 모습. 사진=본인 제공
남양주시 자원봉사센터에서 센터팀장과 장남익 경감 그리고 국악 봉사단 놀패 봉사단원들의 모습. 사진=본인 제공
그러나 장 경감에게도 고충이 있다. 남자 소리꾼이 많지 않아 인력 부족에 시달려야 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홀로 악기를 연주하는 동시에 노래까지 소화해낸다. 스피커, 장구 받침대 등 다양한 소품 준비도 장 경감의 몫이다.
노인복지센터에서 국악 봉사단 놀패 단원들과 민요 공연을 하는 장남익 경감의 모습. 사진=본인 제공
그럼에도 그는 비번 때 시간을 활용해 공연을 준비하고 봉사를 다닌다. 쉬는 날이면 시나리오를 짜고, 공연 준비에 열정을 쏟느라 무척 바쁘다. 실제 요양원이나 경로당에서 하는 공연 시간만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되기 때문에 허투루 준비할 수도 없다. 체력적으로 힘들 수도 있지만 장 경감은 “전혀 힘들지 않다”고 했다.
공연하는 시간만큼은 어르신과 함께 힐링하는 기분
이토록 장 경감이 민요 봉사에 열정을 쏟는 것은 공연을 하면서 되레 자신이 ‘힐링’을 받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봉사를 하다 보면 우리 봉사단보다 더 흥도 많고 노래도 잘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나기도 한다”라며 “함께 어우러져서 놀다 보면 내가 공연을 보러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고 했다. 장 경감을 아들처럼 대해주시는 어르신들도 많다. 그는 “‘다음에 또 언제 올 거냐’라면서 공연을 기다려주시는 어르신들도 있고, 공연할 때마다 즐겁게 호응해주실 때 정말 보람차다”라고 말했다.
민요 공연에 춤추는 어르신들. 사진=본인 제공
아울러 공연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장 경감은 기자에게 “어르신들이 공연을 보는 시간 동안이라도 통증이나 시련을 잊었으면 한다”라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라는 메시지도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장 경감은 소리를 배우면서부터 더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하고 경찰 업무도 잘 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위안도 많이 받았다. 그는 “과거에는 정말 숫기가 없어서 남 앞에서 창피해서 내 자신을 표현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소리를 통해 무언가를 표출하면서 성격도 외향적으로 변했고, 경찰 업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됐다.
구리경찰서에서 근무 중인 교통조사팀장 장남익 경감. 2024.05.09 김예슬 기자 seul56@donga.com
그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나중에 우연치 않게 민원인들을 다시 만난 적이 있다”라며 “그때 감사했다는 말 한마디를 들을 때 굉장히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성실하고 솔선수범한 면모를 보인 장 경감은 실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소리’는 느림의 미학, 사랑, 어르신 공경 등 무수한 가치가 담겨있어
장남익 경감과 국악 봉사단 놀패 봉사단원들의 모습. 사진=본인 제공
그는 국악 장르가 학교에서 정식 수업으로 채택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장 경감은 “현대 사회는 정이 없고 서로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시대”라면서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모든 것이 빨라지고 편리해진 것이 좋기도 하지만, 여유와 배려가 많이 없어진 세상이 된 거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느림의 미학’을 전할 수 있는 노래를 배우는 게 필요한 때인 것 같다”라고 했다.
장 경감은 “국악 가사를 통해 어른들을 공경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 권선징악과 같은 가치를 어린이들한테 가르쳤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노래는 은연중에 학습되기 때문에 국악을 배우면 사회성이 길러지고 사회에 만연한 비인간성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구리경찰서에서 근무 중인 교통조사팀장 장남익 경감. 2024.05.09 김예슬 기자 seul56@donga.com
그는 “우는 아이한테 ‘경찰 아저씨 오면 혼난다’라면서 울음을 강제로 그치게 하는 이미지보다는 반가워서 울음을 그칠 수 있는 경찰 이미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한테만큼은 밝고 긍정적인 경찰관에 대한 이미지가 심어졌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마지막으로 장 경감은 “외국 소방관들은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마주치면 선물을 주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경찰도 포돌이 캐릭터를 인형으로 만들어 선물로 건넬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가 됐으면 한다”라면서 “아이들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경찰관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존경하는 경찰관으로 남고 싶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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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동아닷컴 기자 seul5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