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디젤엔진을 발명한 독일 엔지니어 루돌프 디젤. 그가 1900년 파리박람회에서 디젤엔진을 시연하며 쓴 연료는 땅콩기름이었습니다. 120년 넘게 지난 지금, 이제 콩기름은 비행기까지 띄웁니다. 지속가능 항공유(Sustainable Aviation Fuel), 약자로 SAF 이야기입니다.
항공 시장에도 ‘탄소중립’ 바람이 불면서 폐식용유로 만든 SAF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는데요. SAF는 흔히 ‘친환경 비행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평가받죠. 동시에 ‘항공산업의 대규모 그린워싱(친환경 위장술)’이란 회의론도 공존합니다. 오늘은 항공과 정유업계의 떠오르는 이슈, 지속가능 항공유(SAF) 시장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항공 연료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2.5%를 차지한다. 어떻게 이걸 줄일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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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 없이 날 수 있을까
지난해 11월 28일 지속가능 항공유(SAF)를 넣은 보잉 787 드림라이너가 대서양 횡단(런던에서 뉴욕까지) 비행에 성공합니다. 세계 최초의 100% SAF를 이용한 장거리 비행이었죠.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은 “탈탄소화를 향한 항공 로드맵의 역사적 순간”이라며 비행 성공을 자축했는데요. SAF는 정확히 무엇일까요.지속가능 항공유(SAF)란 말 그대로 화석연료가 아닌 지속가능한 공급원료로 생산되는 항공연료입니다. 폐식용유와 동식물성 기름, 옥수수와 해조류, 폐목재가 주원료가 되고요. 음식물 쓰레기나 폐수처리 슬러지 같은 쓰레기도 재료가 됩니다.
SAF라고 해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콩이나 옥수수 같은 식물은 성장할 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잖아요. 따라서 전체 수명주기로 따지면 당연히 지금 쓰는 제트유(화석연료 항공유)와 비교하면 탄소배출량이 훨씬 적습니다. 탄소배출량이 최대 80%까지 줄어든다고 하죠.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은 지난해 100% SAF 장거리 비행에 성공했다. 출처 버진애틀랜틱
그래서 항공은 친환경이 될 수가 없다, 고로 비행기를 덜 타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나요. 오히려 2050년까지 전 세계 연간 항공기 승객 수는 지금의 2배 수준인 80억명으로 불어날 거라는데요. 어떻게 해야 비행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탄소중립으로 나아갈까에 대한 고민 끝에 찾은 답이 SAF입니다.
지금은 시장 점유율 0.1%이지만
지속가능 항공유(SAF)는 아직 전체 항공연료 소비량의 0.1%만 차지합니다. 많은 장점(저탄소, 호환성)에도 좀처럼 소비가 확 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가격이죠. 제트유와 비교하면 생산단가가 3~5배에 달합니다.주요국은 일제히 지속가능 항공유(SAF) 늘리기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가장 화끈한 건 역시 미국이죠. 미국은 2030년까지 SAF를 연간 30억 갤런, 2050년엔 350억 갤런을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지난해 미국 내 소비량(2450만 갤런)과 비교하면 7년 뒤 120배, 27년 뒤 1400배로 늘린다는 엄청난 계획인데요. 이를 통해 2050년엔 미국 내 SAF 생산량이 자국의 항공연료 수요를 100% 충족하게 만들 거란 목표입니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미국 정부는 관련 보조금을 팍팍 지급 중인데요. 2022년 제정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지난해부터 SAF 1갤런 생산당 1.25~1.75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합니다. SAF 생태계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먼저 치고 나오는 거죠.
미국 에너지부 보고서에 실린 항공유 급유 사진.
이런 조치가 소비자가 부담할 항공요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솔직히 좀 걱정스러운데요. SAF 산업 측면에선 상당한 수요가 새로 열린다는 뜻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퍼리컬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6억2260만 달러(약 8400억원)였던 SAF 시장은 2033년이면 152억5816만 달러(약 20조6000억원)로 커질 거라고 하죠.
BP나 쉘 같은 메이저 정유사는 SAF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 출처는 BP의 항공유 부서인 에어BP.
SAF가 제트유를 대체하려면
어떤가요. 수십조원대 규모의 시장이 조만간 열린다고 생각하니, 이 흐름을 빨리 따라잡아야겠다는 조바심이 나시나요. 그런데 잠시만요. 지금 나오는 그 로드맵들, 정말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정말 SAF가 2050년엔 제트유를 대체할 정도로 그렇게 많이 생산될 수가 있나요?이건 자본의 문제가 아닙니다. 원료공급의 뚜렷한 한계입니다. SAF의 중요한 원료 중 하나가 폐식용유인데요. ‘치킨 튀긴 기름으로 비행기가 하늘을 난다’는 발상은 매우 훌륭하지만, 폐식용유는 석유처럼 땅을 파면 계속 나오는 원료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매년 약 60만t의 폐식용유가 수집되는데요. 그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SAF로 만든다면? 아마 현재 미국 항공연료 수요의 고작 1% 정도를 채울 수 있을 겁니다.
폐식용유는 지금도 국경을 넘나들며 팔려나간다. 하지만 폐식용유 공급은 무한정 늘릴 순 없다. 게티이미지
물론 폐식용유만 SAF 원료는 아니죠. 옥수수로 만든 바이오에탄올도 주요 원료로 꼽히는데요. 이건 옥수수를 키울 땅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기사에서 “영국이 제트유를 (옥수수가 원료인 SAF로) 완전히 대체하려면 모든 농경지의 50%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식량 안보와 숲·습지 보존 측면에서 SAF로 바이오에탄올 수요가 늘어나는 건 오히려 마이너스일지 모릅니다.
미국 IPS는 지속가능 항공유가 친환경 항공의 해법이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항공업계의 ‘그린워싱(친환경 위장술)’이라고 비판한다. 마치 SAF만 넣으면 탄소배출 없이 비행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IPS 보고서 표지
그럼 어쩌란 말이냐고요? ‘더 적은 비행’만이 친환경을 위한 진짜 해답이란 주장입니다. 아무리 폐식용유와 바이오에탄올과 폐목재를 다 동원해서 SAF 생산을 최대로 끌어올려도 항공수요가 줄지 않는 한 ‘탄소중립 비행’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거죠. SAF와 관련한 장밋빛 전망에 대해 조금은 냉정해질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By.딥다이브
지속가능 항공유(SAF)가 무엇인지 알고 계셨나요? 앞으로 점점 많이 접하게 될 용어여서 소개해드렸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항공도 친환경이 가능할까요. 전기 항공기와 수소 항공기 모두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속가능항공유(SAF)가 친환경의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떠오릅니다. 폐식용유와 동식물성 기름, 옥수수와 해조류 등을 원료로 하는 항공연료입니다.
-전체 생애주기로 볼 때 SAF는 제트유보다 탄소배출량을 80% 줄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생산자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SAF 생산을 공격적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유럽, 일본 등은 연료의 일정비율을 SAF로 채우도록 의무화합니다. 지금은 전체 항공연료의 0.1%가 채 되지 않는 SAF 수요가 빠르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새롭게 열리는 시장에 대한 관심은 뜨겁습니다. 문제는 SAF 생산을 그렇게 확 늘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인데요. SAF 생산 붐 때문에 혹시 삼림 벌채가 늘고 식량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SAF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는 점 알아두세요.
*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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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