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atg1012@donga.com
귀는 듣고 입은 말을 합니다. 귀가 둘인 것은 말하기의 두 배를 듣기에 써야 한다는 뜻일까요? 정신분석가는 듣기 90%, 말하기 10% 정도로 피분석자에게 관여합니다. 말을 많이 하려는 욕구가 불쑥불쑥 올라오지만 애써서 참습니다. 이끌지 않고 따라가면서 돕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어려울수록 피분석자의 이야기에서 무엇인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흔히 감정적 동요를 살피지만, 말 자체에서 실마리를 찾기도 합니다. ‘명사’보다는 ‘동사’에 집중합니다. 명사 뒤에 숨어서 마음을 감추기는 쉽습니다. 명사보다는 동사가 솔직합니다. 동사가 명사가 되는 순간, 동사가 지닌 구체성이 사라집니다. 명사에 사로잡히면 생각이 움직이는 공간이 좁아집니다. ‘불안’이나 ‘우울’이라는 명사 뒤에 숨는 순간 왜 어떻게 불안하거나 우울하게 느끼는지가 모호하게 되어 버리니 자세히 살펴서 찾아내야 합니다.
사고방식에 융통성이 있는 사람을 소신이 없는 유약한 존재로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성숙의 본질은 생각의 유연성입니다. 심사숙고한다는 것은 생각을 새김질할 유연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반추하지 않는 사람이 확신에 찬 단호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고체계가 굳어 있다는 뜻입니다. 모르고 있는 것도 능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알거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단 사로잡히면 그 생각을 머리에서 털어내지 못하고, 관점이나 맥락이 다른 생각으로 옮겨가는 일을 매우 어려워합니다. 직관이 가능한 일도 그 사람 마음에서는 자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배우려는 의지가 없으니 직관 능력도 점점 떨어집니다.
경직된 생각에 사로잡히면 옳음과 그름을 가리려는 성향이 강해집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우월감에 젖어 있습니다. 우월감은 쉽게 포기되지 않습니다. 생각의 흐름이 막혀 있지 않고 자유로워야 포기와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다른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지 기능의 공간이 닫히면 독단으로 이어집니다.
세상일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런저런 이유들을 그럴듯하게 내세우지만 개인적 동기가 숨어 있기 십상입니다. “무엇의 이름으로”는 “무엇의 미명(美名)에 숨어서”라는 뜻입니다.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은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생각하기 자체가 골치 앓는 일이니 되도록 세상 만물을 단순하게 이해하려 합니다.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은 ‘학비’를 부담하고 공부를 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새롭게 뜯어고치는’ 복잡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를 회피하고 ‘개혁’이라는 한 단어에 마음을 단순히 빼앗겨서 흥분하게 되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일에는 어떤 일이든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간에 늘 값을 치러야 합니다. 생각을 유연하게 만드는 경험이 긍정적이어도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또 동의하지 않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추가 부담이 생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지 않아야 안전하다고 쉽게 믿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고집하다가 값을 더 치러야만 한다면 큰일이라는 점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이른 때라는 말도 있습니다. 분석에서는 망설임을 뒤로하고 벗어날 때 자유로워지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