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국력이 성장하면 음식 산업은 자연스럽게 세계화된다. 14년 전, 네팔 카트만두의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할 때였다. 카레 위주의 식사가 지겨워진 일행이 한국에서 가져간 김을 꺼냈다. 호텔 종업원이 한참을 쳐다보더니 궁금해했다. 김을 설명했으나, 이해시키는 데에 실패하고, 조미김 두 봉지를 건넸다. 다음 날 우리 일행과 마주친 종업원이 맛있게 먹었다며 반가워했다. 여분의 김이 있었다면 더 주고 싶을 정도로 호들갑스레 고마움을 표현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의 선풍적인 인기는 수출액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수산물 수출 부동의 1위였던 참치 실적을 2019년부터 김이 넘어섰다. 작년에는 7억9000만 달러를 수출해 세계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했다. 수산 식품 수출 역사상 단일 품목에서 처음으로 1조 원을 달성했다. 한국이 김을 수출하는 국가는 2010년 64개국에서 2023년 124개국으로 약 두 배로 증가했다. 세계인에게 김은 곧 한국산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김 전성시대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니다. 김 양식 기원에 관한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한국수산지’(1910년)에는 “전남 영암 출신인 김여익이 태인도에 살면서 떠내려온 조릿대에 김이 붙어 자라는 걸 보고 나뭇가지를 이용해 양식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남도는 태인도의 김 시배지를 기념물로 지정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조선의 수산’(1924년)에서 소개하고 있다. “100년 전 완도군 조약도에 사는 김유몽이 해안을 거닐다가 밀려온 나무에 김이 자라는 걸 보고 나뭇가지를 꽂아 김 양식을 하게 된 것이 시초다”는 내용이 있다. 굴비나 도루묵 유래담처럼 허구성이 가미된 이야기인지 역사적 사실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김 양식이 조선 시대부터 시작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1908년 한국어업법 공포 후 1909년 시행될 당시 김이 유일한 양식업이었으니 가장 오래된 수산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