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많이 찾는 태국의 유명 휴양지 파타야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11일 파타야의 한 저수지에서 태국 경찰이 건져 올린 플라스틱 드럼통 안에서 손가락이 모두 절단되는 등 크게 훼손된 30대 한국인 남성의 시신이 나왔다. 파타야에선 2015년 한국인 20대 남성을 취업 빌미로 꾀어 도박사이트 설계와 운영을 맡기고 감금과 폭행을 하다 숨지게 한 일도 있었다. 이 사건은 영화 ‘범죄도시 4’의 모티브가 됐다.
▷두 사건 모두 한국인이 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다. 사업, 관광 등으로 왕래가 활발해지면서 보이스피싱, 온라인 도박, 마약 밀매, 납치·살인 등 한국인을 노린 범죄가 동남아시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내의 범죄자들과 한탕을 노린 청년들이 치안이 느슨한 동남아로 건너가 범죄조직을 결성하고, 한국과 연계해 범행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드럼통 살인사건’의 피의자들도 폭력, 절도 등의 전과가 있었고, 국내 폭력조직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다.
▷동남아의 한국인 대상 범죄는 필리핀에서 가장 많았지만 요즘은 태국이 범죄자들 사이에서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단 90일 동안 무비자로 출입국이 가능해 한국으로 오가기 쉽다. 동남아 국가 중 상대적으로 인터넷 등 정보기술(IT) 인프라가 발달해 도박사이트를 운영하기 유리하다. 2022년 6월 대마를 마약류에서 제외해 사실상 합법화하면서 마약을 유통하기도 쉽다. 범죄가 탄로 나더라도 육로를 통해 인근 국가로 숨어들기 용이하다.
▷동남아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사실상 국경이 의미가 없다. ‘동남아 한국인 3대 마약왕’ 가운데 ‘텔레그램 마약왕’ 박모 씨는 필리핀에서 체포돼 수감 중이다. ‘탈북 마약왕’ 최모 씨는 태국에서 잡혔다 풀려난 뒤 캄보디아에서 검거됐고, 셋 중 우두머리 격인 ‘사라 김’ 김모 씨는 베트남에서 잡혔다. 중국,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과 합동수사팀을 결성하는 등 협력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경 없는 범죄와 맞서려면 우리 경찰도 좀 더 글로벌해져야 한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