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한국 병원에서 승모근 보톡스를 맞으면 1만2000엔(약 10만4000원)인데, 일본에선 6만 엔(약 52만 원)이나 내야 해요.”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가 사상 처음으로 60만 명을 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 최대치보다 10만 명 이상 많다. 환자들은 일본(18만 명)과 중국(11만 명) 미국(7만 명) 순이지만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뉴(NEW) 7’ 국가 환자들도 9만 명을 넘는다. 경제적 파급 효과는 7조 원, 취업유발 인원은 6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왜 한국에서 치료받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의료기술은 선진국인데, 비용은 개발도상국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 의사들은 암과 간 이식, 뇌혈관 등 중증질환 치료뿐만 아니라 라식, 임플란트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K팝, K드라마 등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은 한국 스타일 성형을 선호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드라이브스루’ 검사가 알려지는 등 한국 의료 시스템의 브랜드 파워도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2019년 16만 명 넘게 한국을 찾았던 중국 환자들은 지난해 30%가량 줄었다. 러시아 환자도 많을 때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외국인 환자 수요는 언제라도 경제, 외교, 안보, 유행 등의 영향으로 급감할 수 있다. 싱가포르, 태국 등 쟁쟁한 경쟁자도 많다.
피부과, 성형외과에 쏠린 수요를 중증질환으로 옮길 필요도 있다. 미용 수술은 유행에 민감해 수요 변화가 클 뿐 아니라 태국, 말레이시아, 브라질, 튀르키예에서도 가능하다. 그 대신 고난도 수술에서 꾸준한 실력을 보여야 중증 환자들이 선호하는 미국, 독일 같은 ‘업계 톱티어’에 오를 수 있다. 만혼이 증가하는 국가가 많은 상황에서 난임 시술 같은 글로벌 경쟁력이 높은 분야에 집중하는 것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이 밖에도 비대면 진료, 의료관광 생태계 복원, 전문 통역사 확보, 지역 특화 등 풀어야 할 과제는 넘친다.
외국인 환자들은 치료만 잘한다고 오지 않는다. 할랄을 엄격하게 따지는 무슬림에겐 음식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내과통합(9만 명), 건강검진(5만 명), 한방통합(1만8000명), 치과(1만5000명)를 방문한 외국인도 많았다. 고무적인 성과인 만큼 모처럼 되살아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더 준비해야 할 때다.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