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테헤란 남쪽 하바란엔 묘비가 없는 공동묘지가 있다. 원래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이 묻히는 곳이었는데, 1988년 이란 당국이 정치범을 대규모로 처형한 뒤 시신을 가져다 버렸다. 가족들이 발견했을 때 시신들은 매장도 되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이란 정부는 추모를 막았고, 무덤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를 없앴고, 묘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렸으며, 꽃도 심지 못하게 석회와 소금물을 뿌렸다. 최근엔 2m 높이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 밖에서 바라볼 수도 없게 만들었다. 희생자 가족이 구성한 단체 ‘하바란의 어머니들’은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36년째 멈추지 않고 있다.
▷처형은 이란-이라크 전쟁 말기부터 준비됐다. 희생자들은 이란인민전사(PMOI)나 공산당원 등 좌파들로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정을 전복할 땐 같은 편에서 싸운 이들이었다. 혁명 성공 뒤 반체제 세력으로 몰린 것이다. 주로 평화시위를 하다 체포된 이들이었다. 당시 이란 전역에서 5000∼3만 명이 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증언에 따르면 6인 1조로 지게차에 실려 30분마다 크레인에 목이 매달렸다고 한다. 아이들도 희생됐다. 22일 동안 채찍질을 550번 당한 끝에 숨진 여성도 있었다.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처형 명령을 내렸고, ‘죽음의 위원회’로 불리는 4인 위원회가 ‘재심’을 해 교수형 판결을 내렸다. 각 판결에 5분도 안 걸렸다고 전해진다. 4인 위원 중 한 명이 19일(현지 시간) 헬기 사고로 외교장관과 함께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다. 1988년 28세로 수도의 검찰청 차장으로 일했던 그에겐 ‘테헤란의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말고도 대(大)처형에 관여한 이들은 이후 승승장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추락한 헬기에서 죽음은 순식간에 닥쳤을 터이다. “이 쉬운 죽음은 그들에게 충분하지 않아요. 그들은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개처럼 울부짖으며 길고 고통스러운 처벌을 받아야 했어요.” 이란 북서부 라히잔에 사는 한 시민(55)이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밝힌 소감이다. 이런 이들과는 반대로 테헤란의 광장엔 라이시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파가 운집하기도 했다. 이란의 오래 묵은 한(恨)은 언제나 풀리게 될까.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