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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책 실패땐 사후평가 ‘핫워시’ 점검… 日, 방위비 인상 두고 1년넘게 의견 수렴

입력 | 2024-05-23 03:00:00

[정책 혼선, 구멍난 대응체계]
佛, 정책 시민참여 홈피 상시운영




세계 주요 선진국 정부에서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단계에 걸쳐 검토 및 제어 장치를 두고 있다. 정책 설계 과정에서 정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소한 결점이 지적돼 국민적 반발이 커지면 정책 전체가 좌초돼 국가 안보 및 경제에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책 취약점만 찾아내는 ‘레드팀’을 정부 내에 운영하는 미국, 외부 전문가 회의와 당정 회의를 상시로 열며 정책을 ‘크로스체크’하는 일본 등이 대표적이다.

● 경고 전담 ‘레드팀’ 운영하는 美

미국은 정책의 취약점을 경고하는 ‘선의의 비판자’, 이른바 레드팀을 비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5년 이라크 전쟁에 대한 레드팀을 소집해 군사전략 관련 기밀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당시 레드팀은 이라크에 미군 증파를 검토하던 부시 전 대통령에게 “이라크 정부에 대한 여론 악화로 반군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하는 등 전략 수정을 권고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당시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레드팀 역할을 맡겼다고 밝혔다.

레드팀 운영에도 정책 오판에 따른 실패가 발생하면 ‘핫 워시(Hot wash·뜨거운 세척)’로 불리는 내부 평가 절차를 거친다. 핫 워시는 문제 발생 직후 기억이 생생할 때 하는 사후 검토를 뜻한다. 군인들이 훈련이나 임무 직후 무기를 세척하기 위해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데서 유래했다. 군사 전략의 일환으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전 분야에 활용된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 국방부의 장기간에 걸친 회의에도 아프가니스탄 철군 당시 미군 사상자 발생을 막지 못하자 정책 기획과 집행 과정에 대한 핫 워시 조사를 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이 최악의 시나리오와 후속 조치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내용의 사후 보고서를 펴냈다.

● 日·佛 등에선 ‘사전 여론 탐색’ 상시화

일본 정부의 정책 추진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 회의와 여당 내, 여당과 정부 간 다양한 회의체를 가동한다. 설익은 정책을 밀어붙였다가 지지율이 떨어지면 의원내각제 특성상 임기와 상관없이 언제라도 총리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작된 방위비 인상이 대표적이다. 집권 자민당은 2021년 10월 총선에서 ‘방위력 정비계획’ 조기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약 발표 수개월 전 언론에 정책 내용을 흘리며 사전 여론 탐색도 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그해 말 국회에서 “향후 1년에 걸쳐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이듬해 1월 ‘유식자(有識者) 회의’라는 외부 전문가 회의체를 가동했다. 자민당 내 정책조정심의회, 총무회, 당정 회의 등은 상시적으로 열렸다. 각의(국무회의)를 통해 정책이 추진된 게 그해 12월이다. ‘방위비 인상’이라는 정답을 정해 놓고도 1년 넘게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다.

프랑스 정부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기 전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민 참여’ 제도를 두고 있다. 시민 참여 제도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첫 집권 때인 2019년 11월 신설된 총리실 산하 ‘시민 참여를 위한 부처 간 센터(CIPC)’가 담당한다. CIPC는 의견 수렴을 위한 플랫폼인 홈페이지에 “시민들은 개혁정책, 공공정책,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