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銀 노조 “결혼 안해도 혜택줘야” “저출산 부추기나” 반대 의견도 많아
최근 비혼(非婚)을 선언한 직원에게 현금을 주는 이른바 ‘비혼 축의금’을 도입한 민간기업이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공공기관 노동조합에서도 이런 요구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비혼도 결혼·출산처럼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선택’이라는 옹호론과 ‘합계출산율 0.6명대의 초저출산 국가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대론이 엇갈리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 노조는 최근 비혼을 선언한 임직원에게 비혼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사측에 요구하기로 했다. 이는 연말 노사 단체협약 협상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사측은 아직 노조의 요청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이 은행은 결혼한 직원에게 유급휴가와 축하금 등을 지급하는데, 일부 조합원이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직원도 결혼에 준하는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건의한 데 따른 것이다.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은 기획재정부가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기타공공기관이다.
IBK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비혼금을 도입하려면 기재부의 허가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겠지만, 노조 측은 결혼과 출산에 대해 달라진 인식을 고려해서 검토할 만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비혼 축의금’ 논란…“기혼자만 우대 불공정” vs “저출산 부추기나”
일부 대기업, 경조금 지원 등 이어
기업銀 공공기관 첫 도입 논의
“시대 반영” vs “정책 역행” 엇갈려
“시민들간 사회적 합의 필요” 지적
“결혼과 출산 계획이 없다고 해서 사내 복지에서 손해를 보면 안 되죠.”(2년 차 회사원 전모 씨·28)기업銀 공공기관 첫 도입 논의
“시대 반영” vs “정책 역행” 엇갈려
“시민들간 사회적 합의 필요” 지적
비혼 선언 직원에게 혜택을 주는 ‘비혼 축의금’ 제도를 신설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이를 보는 청년 회사원의 시각은 엇갈렸다. 결혼과 출산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공정’을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회사원이 늘어난 데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찬성론이 있는 반면에 반대쪽에선 저출산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기업이 오히려 비혼을 선호하는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비혼 선택 존중을” vs “출산 지원에 집중해야”
이미 LG유플러스, NH투자증권, KB증권 등 사기업에선 비혼을 선언한 직원들에게 지원금과 유급 휴가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기업 안에서도 의견은 갈리고 있다. 비혼금 제도가 있는 한 회사에 2년째 근무 중인 김모 씨(26)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느낌이라 직원들 만족도가 높다”며 “출산 관련 복지도 잘돼 있어 (비혼금이) 시대를 역행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 출산용품 지원 중단, 출산축하금 폐지… “저출산 대응 역행”
공직 사회에서는 출산용품 지원이 중단되는 등 결혼과 출산에 따른 혜택이 축소되는 사례가 생겨 ‘저출산 대응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올해부터 임신·출산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출산 준비용품 지원사업을 중단했다. 출생률 감소로 혜택 대상이 줄었고, 생애 주기별 맞춤형 복지 수요가 다양해졌다는 게 이유였다. 공단은 “올해부터 (물품 지원 대신) 일·가정 양립 및 육아·보육 프로그램 등으로 전환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지방직 공무원 박모 씨(26)는 “공무원 조직은 아직 보수적이라 다른 프로그램을 새로 운영한다고 해도 맘 편히 사용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반면 김모 씨(28)는 “한정된 예산 내에서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결정”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출산 준비 중인 여성들을 지원하는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광주시는 재정적 부담으로 인해 지난해 출산 가구에 100만 원을 주는 출산축하금을 폐지했다. 당시 광주 육아카페에는 “곧 출산 예정인데 갑자기 폐지한다는 게 말이 되냐”, “광주만 왜 역행하는 건지 너무한다”는 반응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국내 출산율 전망은 밝지 않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출생등록 아동은 2만87명으로 전년 동월(1만8287명)보다 소폭 증가했다. 전년 동월 대비 출생등록 아동이 늘어난 건 지난해 1월 이후 15개월 만이다. 하지만 정부 내에선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반등일 뿐, 올해 말까지는 출산율이 반등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7∼12월) 혼인 건수가 2022년 같은 기간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결혼·출산 장려와 비혼금 등 비혼 지원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비혼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생략된 채로 제도 등이 먼저 도입되면서 갈등이 발생했다”며 “국민뿐 아니라 정치권 등에서도 담론을 형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