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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의 만남… 바르케타 전성기에 바치는 찬사 [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입력 | 2024-05-24 03:00:00

영국 전통 디자인에 이탈리아 감성 넣은 ‘미드서머’
작고 날렵하면서 지붕 없는 ‘바르케타’ 스타일 적용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영국 완성차 업체 대다수는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오랜 시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독립 자동차 업체로 남아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가 ‘모건모터컴퍼니’다. 1910년 설립된 모건은 올해로 창립 114주년을 맞았다. 모건은 완성차 스타일은 물론이고 생산방식에서도 고전적 분위기가 묻어나는 점이 독특하다. 모건이 만드는 모델 중 가장 강력한 ‘플러스 식스’에서도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세로 방향으로 뻗은 라디에이터 그릴, 차체와 뚜렷하게 구분돼 바퀴 주변만 덮도록 만들어진 펜더와 원형 헤드램프, 긴 보닛과 짧은 트렁크, 두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탑승 공간과 고전적 분위기의 아날로그 계기판, 비스듬히 아래로 떨어지는 트렁크 부분 등이 자아내는 모습은 1920∼30년대의 전형적인 2인승 스포츠카를 떠올리게 한다. 모건은 현대적 기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클래식카의 유전자를 품고 있다. 이 점은 자동차 애호가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모건을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영국 자동차 업체 ‘모건모터컴퍼니’가 만든 ‘미드서머’. 모건은 미드서머에 자동차 만들기 전통과 이탈리아 피닌파리나의 디자인 감성을 결합했다. 모건모터컴퍼니 제공

최근 모건은 열광적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특별한 차를 선보였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디자인 전문 업체 피닌파리나와 손잡고 만든 ‘미드서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미드서머는 모건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 디자인 전문 업체와 협업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두 업체가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역사와 함께 장인정신이라는 공통적 자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업체는 차체 대부분을 수작업으로 가공해 만드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런 생산 과정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차체는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다. 두 업체의 협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탑승 공간을 감싸는 목재는 장인정신뿐 아니라 바르케타 스타일을 강조하는 중요한 요소기도 하다. 고전적 디자인의 계기가 돋보이지만 현대적 장비들도 두루 갖췄다.

미드서머는 모건의 클래식카 분위기를 한층 더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두 업체는 시대를 뛰어넘은 모건 고유의 디자인을 기념하면서도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강조하기 위해 색다른 변화를 줬다. 유럽 스포츠카 전성기에 돋보인 ‘바르케타’ 스타일을 접목한 것이다. 바르케타는 ‘작은 보트’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주로 작고 날렵하면서 지붕이 없는 2인승 스포츠카에 붙은 이름이다. 바르케타 스타일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목재는 모건에도 큰 의미가 있다. 모건은 뼈대와 차체를 잇는 구조물에 물푸레나무를 쓰는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일반 모델에서는 목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데 미드서머에서는 탑승 공간의 열린 부분을 질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목재로 둘러 자연스러우면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디자인 관점에서는 피닌파리나의 감각이 돋보인다. 전체적 형태는 바탕이 된 플러스 식스의 비례를 그대로 살리면서 바르케타 스타일을 강조하고 미래적 분위기를 더했다. 그릴은 플러스 식스보다 더 수직에 가깝게 세워 고전적 분위기를 더했지만 헤드램프는 LED의 선명한 빛으로 최신 기술이 담겨 있음을 나타냈다. 좌우로 나뉘어 차체 위로 살짝 솟은 앞 유리 역시 바르케타 스타일을 강조하는 요소다.

실내도 새로운 방식으로 고전적 분위기를 표현했다. 수작업으로 만든 원형 계기는 고전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바탕을 흰색으로 처리했다. 차체 한가운데에 길이 방향으로 뻗은 센터 터널에 목재를 쓴 것도 바르케타 개념을 충실하게 반영한 디자인 요소다. 물론 편의성을 고려해 스티어링 휠 너머의 원형 계기 사이에는 다기능 LCD 디스플레이를 설치했고, 전자식 기어 레버와 젠하이저 오디오 시스템을 위한 조절 장치도 오늘날 운전자들이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장비들이다.

모건 미드서머는 영국의 전통적 자동차 만들기와 이탈리아의 감성적 디자인의 합창으로 바르케타 전성기에 바치는 찬사다. 모건은 미드서머를 올해 말부터 설립 115주년을 맞는 2025년까지 생산할 계획이다. 한 대당 약 20만 달러(약 2억7300만 원)란 가격으로 단 50대만 만들기로 했지만 이미 예약이 끝나버렸다고 한다. 뿌리 깊은 장인정신이 빚어낸 예술작품과 같은 차는 자동차 애호가들이 손에 넣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마력이 있기 마련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