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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달 16일 서울고법 간담회에서 이같이 ‘판사정원법’ 처리를 간곡히 호소했다. 사법부 최대 현안인 ‘재판 지연’을 해소하기 위해선 법관 증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10년째 동결 상태인 법관 정원의 족쇄를 푸는 ‘각급 법원 판사정원법 개정안’은 이달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를 통과하고도 법안이 자동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서울고법 격려 방문 간담회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법원 “내년부터 법관 임용절벽 우려…21대 국회서 법관 증원 확정돼야”
법원은 반드시 21대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 6월 안에는 법관 임용 규모가 확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22대 국회로 넘길 경우 당장 법관 부족으로 인한 재판 지연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는게 법원 우려다.
특히 법원은 올해 실력 있는 판사를 최대한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다. 법원이 올해를 판사 임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는 이유는 내년부터 판사 임용에 필요한 최소법조경력이 5년에서 7년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현재 법관 지원 자격은 법조 경력 5년인데, 내년부터는 7년 이상 경력자로 바뀐다. 이 법이 시행되면 능력과 자질을 갖춘 경력 법관 충원이 더 힘들어 질 전망이다. 소위 ‘임용 절벽’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앞서 최소법조경력이 3년에서 5년으로 올라가 임용후보군의 신규풀이 없던 2018년에도 신규법관을 36명밖에 선발하지 못했다. 2029년부터 법조 경력 10년으로 늘어나면 평균 40세에 이르러야 신임 법관으로 임용될 수 있게 된다. 재경지법 한 부장판사는 “능력을 인정받은 7년차 이상 변호사는 로펌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데다가, 나이도 30대 후반에서 40대로 대부분 자녀를 키우고 있어 지방 등 순환 근무를 해야 하는 법관을 선호하지 않는다”며 “7년차 이상 경력자 가운데 능력과 자질을 모두 갖춘 법관을 임용하기는 매우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내년이 되기전, 올해 안에최대한 실력을 갖춘 법조경력자를 법관으로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법관 증원을 더 미룰 물리적 시간이 없다”고 했다.
●“실력있는 법관 지원자 줄어든다 위기감…판사증원 위한 여유분 역대 최저”
또한 법관증원이 무산되면 기회가 좁다고 보고 지원 인원마저 줄어 인재 확보가 더욱 어렵게 된다. 공정하고 질 높은 재판을 받아야 할 국민 권리만 침해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한 법원 관계자는 “법관 증원이 어렵다는 소식이 이어지면서 자신이 속한 로펌이나 검찰청 등 소속 기관에 사표를 내고 지원해야 하는 지원자들이 부담을 느껴 실제 법관 지원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현장에선 이미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판사 증원을 위한 여유분 격인 정원 대비 결원율은 지난해 말 0.68%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01년만해도 15.72% 였던 결원율이 1% 아래까지 떨어진 것이다. 현행법은 ‘각급 법원 판사의 수는 3214명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2014년 법 개정 이후 10년째 그대로다.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3214명인 현행 판사 정원을 2023년부터 5년에 걸쳐 50명, 80명, 70명, 80명, 90명씩 총 3584명까지 순차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본래 개정안엔 2023년부터 2027년까지로 돼 있었지만 법안 처리 과정에서 해가 바뀌어 판사 증원의 시기만 2024년 7월 1일부터 50명 증원, 2025년 1월 1일부터 80명 증원 등으로 수정됐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최근 성명을 내고 판사정원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다. 변협은 “우리 헌법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지만, 국민은 재판 지연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관 증원이 절실한 만큼 21대 국회 임기 내 반드시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변 역시 “법관 증원은 단순히 법원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문제”라며 “21대 국회가 이를 외면하는 것은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