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각지역 ‘용산막창’의 파막창. 막창 속을 파로 채웠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날이다. 그날 저녁, 삼각지역 인근 막창집에 학창 시절 운동권이었다가 근년 들어 보수 성향임을 커밍아웃한 80년대 학번 선배 소설가, 오랜 법정투쟁 끝에 작년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확정을 받은 중도우파 성향의 일문학 교수, 역시 진보 성향에서 중도우파로 전향한(?) 전 진보 일간지 기자, 그리고 민변 출신 진보 성향의 소설가 겸 변호사, 거기에 회색분자를 자처하는 나까지 다섯 명이 만났다.
김도언 소설가
이 집은 서울 한복판에서 드물게도 대구식 막창을 선보이는 집으로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원탁의 테이블을 놓고 옛날식으로 고기를 구워주는 전형적인 포장마차형 노포다. 우리가 이날 주문했던 것은 이 집의 전매특허랄 수 있는 파막창. 막창 한가운데 푸른색의 파를 집어넣은 것이 퍽이나 낯설었는데, 시각과 함께 미각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머릿속에서 재밌게 떠올렸던 것은 총선이 있기 얼마 전 현직 대통령이 대파 한 단 가격을 놓고 실언했던 부분이었다. 그것이 총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계량할 수 없겠으나 공교롭게도 그날 우리 앞에는 대파가 가미된 막창이 안주로 놓여 있었던 것. 그리고 막창집 이름이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이었던 것. 이게 무슨 조화일까.
2차와 3차까지 이어진 이날의 술자리는 허허롭고 화기애애했다. 비록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다르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다르지만 노포에서는 이렇게 비무장의 우정이 가능하다. 노포는 나누고 포용하고 화해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넌지시 알려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사람의 생애라는 걸 노포는 매일 문을 열고 닫으며 가만 일깨워준다. 그날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 선거 개표 방송을 지켜보자고 하면서도 시비나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했던 이는 단언컨대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가 모이기로 한 곳이 다름아닌 마음부터 푸근해지는 오랜 막창집이었기 때문이다.
김도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