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상 정치부 차장
“윤석열 정부의 불공정과 비상식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길을 가다가 이 질문을 받고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답을 적는다면 무엇을 적겠는가. 옆을 지나가던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것을 꼽을까.
국민의힘 소장파 모임 첫목회가 1박 2일 14시간의 밤샘 끝장토론을 통해 반성문을 써 내려가는 과정도 이 같은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첫목회 구성원 대부분이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에서 낙선한 3040세대다. 집권 여당을 향한 수도권의 차디찬 민심을 피부로 느낀 사람들이다.
첫목회 참석자들은 회의실에 놓인 화이트보드에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수수 의혹과 폐지했던 민정수석실 부활, 채 상병 특검법 재의요구권(거부권) 문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등 30가지 이슈가 화이트보드를 채웠다. 열띤 토론을 벌이며 이슈마다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리고 반성문에 담지 않을 내용은 하나씩 지웠다.
남은 것은 5가지다. 이태원 참사(공감 부재), 연판장 사태(분열), 강서 보궐선거 참패(아집), ‘입틀막’ 경호(불통), 이종섭 전 주호주 대사 임명(회피) 등이다. 대통령실과 친윤(친윤석열)계가 주도해 생긴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5가지 모두 지금은 수습 국면인 살짝 김빠진 이슈들이다. 1월 윤 대통령과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간 갈등을 불러일으킨 김 여사 디올 백 수수 의혹은 토론 막바지까지 포함 여부를 두고 논의가 진행됐지만 빠졌다.
첫목회 브리핑이 끝나자 ‘왜 김건희 여사 문제가 빠졌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첫목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다고 사과했고, 검찰이 전담팀을 꾸려서 수사하고 있으니 지켜보겠다”고 했다.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한 참석자는 “김 여사 문제를 두고 되게 주저하더라.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보수 소장파마저 김 여사 문제 앞에서 주저하는 사이 김 여사는 명쾌한 설명 없이 공개 행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면 22대 국회가 개원한다. 국회가 열리면 원내의 시간이다.
최근 윤 대통령은 초선 당선인과 세 차례 만찬을 했다. 한 당선인이 “대통령의 호위무사가 되겠다”고 발언한 것이 당선인들 입을 타고 알려졌다. 연판장을 돌린 선배 초선 의원들이 기록적인 참패에도 생환한 것을 보고 습득한 생존 기술인지 모르겠다. 민심은 여당에 개헌 저지선(100석)을 간신히 넘긴 108석을 줬다. 이것을 ‘대통령의 호위무사가 돼라’는 주문이라 믿는다면 단단히 착각한 것이다.
박훈상 정치부 차장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