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의사결정에 임신 주체인 여성 참여 미흡 여성에게 출산 동기 갖게 할 방안 뭔지 물어야 실질적인 발언권-결정권 주는 제도 혁신 필요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여성가족부의 장래가 불투명한 가운데 대통령은 저출생대응기획부(가칭)를 신설하겠다고 선언했다. 저출생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이를 전담하는 주무 부서를 만들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뭐든 하면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의 ‘뭐든’에 해당하는 시도 중 하나일 테니 무작정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저출생대응기획부를 만든다고 과연 0.65명(지난해 4분기)까지 떨어진 출산율이 반등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에조차 해당하지 않는 시도도 있다. 서울시장 집무실에 만든다는 상황판이다. 서울시장 집무실에 서울시 출생아 수를 비롯한 저출생 고령화 관련 통계를 바로 표시하는 상황판을 만들겠다고 한다. 시장이 상황판을 아무리 열심히 봐도 시민을 임신시킬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특이한 아이디어다.
물론 정책결정권자가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저출생 문제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에는 하나의 공통된 문제점이 있다. 막상 여성을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거나 여성에게 제대로 조직적·제도적 투자를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 아이는 여성이 낳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 저출생 논의는 뜻밖에 이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 마치 부부 한 쌍이 자녀 둘을 두어야 우리나라 인구가 유지되는 것처럼, 남편과 아내가 각각 2분의 1의 인구 유지력을 가진 것처럼 말할 때가 많다. 비출산의 이유를 남성과 여성에게 같은 비중으로 묻고, 비슷한 비중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는 데 필요한 것은 부부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한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도 아니다. 인구가 유지되기 위해 한 쌍의 이성애자가 아이 둘을 낳아야 한다는 말은, 따져보면 여성 한 명이 남성 한 명의 몫까지 두 번 출산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출산에 관해서는 여성에게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국가와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남성인구 한 명 몫까지 추가로 출산을 감당할 의향이 생길지, 파트너인 남성이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면 아이를 갖고 싶어질지, 그 파트너가 꼭 ‘남편’이기를 원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사회의 기본 단위가 부부가 있는 정상가정이고, 혼인 외 출산이 극히 드물고 사회적으로 배척되고, 남편이 없으면 난임치료 등의 지원을 제대로 받기가 어렵고, 여성의 경력 단절이 출산과 유관한 현실에서 부부 한 쌍이 아니라 여성 개인이 가장 먼저 개선을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임신의 주체인 여성에게 출산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특정하여 거듭 물어야 한다.
셋째, 출산과 반대로, 양육은 여성만 하는 것이 아니다. 보호자와 사회가 함께 하는 일이다. 서울시청 상황판으로 돌아가 보자. 상황판을 아무리 열심히 봐도 원치 않는 여성을 임신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양육 환경은 정책결정권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개선할 수 있다. 돌봄 인력의 적극적인 충원과 업무환경 개선, 어린이보호구역의 안전 강화, 소위 노키즈존 같은 아동혐오시설에 대한 적극적인 제재, 다문화가정 학업중단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 등 정책결정자들이 주목함으로써 개선할 수 있는 미시적인 이슈만 떠올려 보아도 많고도 많다. 사회가 양육과 아동·청소년 보호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 소중히 여기리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태어난 아이가 죽거나 다치지 않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월 급여 200만 원인 필리핀 출신 도우미에게 양육과 돌봄을 개인 단위로 전가하라는 것보다는 좀 더 나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 모든 얘기를 너무 급진적이라고 느낀다면 말하고 싶다. 당신들의 그 느낌의 결과가 바로, 0.65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