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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억 세금 지원 받아놓고 당원 뜻만 따른다는 민주당 [김지현의 정치언락]

입력 | 2024-05-27 14:00:00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와 이재명 대표, 정청래 최고위원(앞줄 왼쪽부터) 등 지도부가 22일 오후 충남 예산군 스플라스 리솜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예산=뉴시스

이달 10일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에 공고된 ‘2024년 1분기 중앙당 수입·지출 총괄표’입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민주당의 전체 수입 710억2077만823원 중 정부로부터 받은 국고 보조금이 247억1781만8010원입니다. 이 기간 민주당 당원들이 낸 당비 132억9295만1955원보다 많습니다.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정부는 정치자금법에 따라 민주당뿐 아니라 주요 정당에 분기별로 경상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올해처럼 선거가 있는 해엔 선거보조금도 별도로 줍니다. 대의민주제에 따라 유권자를 대리하는 정당들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보조금입니다.

물론 이 예산은 민주당 당원이 아닌 사람들도 낸 세금으로 만들어지죠. 요즘 민주당이 “당원 중심의 정당이 되겠다”고 외치며 앞으로는 심지어 국회의장까지도 민주당 당원 뜻대로 뽑자고 주장하는 것이 어불성설인 이유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을 위해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라이브 유튜브 방송을 하며 “현재 2만 명 넘게 탈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당원 중심주의’는 민주당 안에서도 이재명 대표가 가장 앞장서서 외치고 있습니다. 강성 당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추미애 당선인이 의장 경선에서 패배하자 약 2만 명의 당원이 탈당계를 냈다고 하니 직접 달래기에 나선 겁니다.

이 대표는 21일 “소수 팬덤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말 근본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틀 뒤엔 탈당한 당원들에게 직접 쓴 온라인 편지를 공유하며당을 떠나겠다는 말을 어느 때보다 무겁게 듣고 있다. 탈당자 총수가 2만 명을 넘는 것도 문제지만 탈당자 중 백전노장이 많아 당혹스럽다”고 속내를 털어놨죠. 그는 “변화의 기운에 걸맞게 당의 조직도 운영도 정책도 권한 배분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가 충돌하는 현상일 수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번 사건이 단순히 의장 선거 결과에 반발하는 일시적 여진 수준이 아니며, 이번 일을 계기로 아예 당의 근간을 바꾸겠다는 취지로 들립니다.

이재명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당원들에게 보낸 편지. 페이스북 화면 캡처

이 대표의 이 같은 시그널에 발맞춰 지난 22일 1박 2일간 열린 22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도 ‘당원 중심주의’가 핵심 화두였습니다. 이날 워크숍에는 전우용 역사학자 등도 강연에 나서 ‘당원 민주주의’를 거듭 강조했다 하죠. 이와 관련해 민주당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지금은 연예인 팬덤 문화처럼,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그래서 정당에 가입하는 게 하나의 국민적 흐름이고 문화가 되고 있다. 그걸 ‘강성 지지자’ 프레임으로 진단하면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나치게 당원 중심으로 가다 보면 중도층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질문이 나오자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당원민주주의에서는 당원의 민심을 반영하는 것 자체가 중도층을 반영하는 것이다. 민주당 당원은 500만 명에 달하는 만큼, 집단지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을 중도층이라 하지 않으면 누구를 중도층이라 할 수 있겠나”라고 답했다네요.

‘당심이 곧 민심’이라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발언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확신을 갖고 있다면 이번 총선 때도 오롯이 당심만 믿고 가지, 왜 굳이 ‘중도층 표심’에 구애했던 건지 의아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지도부와 22대 국회 당선인들이 22일 충남 예산군 한 리조트에서 열린 22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손뼉 치고 있다. 예산=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의 22대 국회 당선인들이 22일 오후 충남 예산군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단체복을 맞춰 입은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예산=뉴시스

이날 밤까지 이뤄진 워크숍 토의 과정에선 “앞으로 국회의장 후보를 뽑을 때도, 원내대표를 뽑을 때도 당원 투표 비율을 50%까지 늘리자”(양문석 당선인)는 주장도 나왔다고 합니다. 솔직히 민주당이 자기들 당 대표나 원내대표를 어떻게 뽑든 그건 알아서 할 일입니다. 하지만 국회의장은 민주당뿐 아니라 입법부 전체를 대표하는 수장입니다. 그 자리마저 민주당 당원 뜻대로 정하겠다는 건 민주당 당원은 아니지만, 성실한 납세로 대의민주주의와 정당 정치를 뒷받침해 온 다른 유권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이날 워크숍을 마친 뒤 민주당이 22대 국회 전략이라고 내놓은 내용 중엔 ‘검사·장관 탄핵’ ‘입법권 강화’ ‘패스트트랙 기간 단축’ 등 국회법 개정 사항들이 대거 담겼습니다. 복수의 참석 의원들은 이날 워크숍에서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추가로 검사 탄핵을 진행하겠다”, “야당은 정책적 성공이 아니라 정치적 성공을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고 합니다. 이 밖에 정부 측 인사가 국회 상임위원회에 불출석하거나 위증 또는 자료를 미제출할 경우 처벌을 강화하겠다는데에도 의견을 모았다 합니다. 입법권을 강화해 행정부와 맞서겠다는 취지입니다. 사실 민주당이 21대 국회 때부터 벼르던 일들이죠. 결국 당원들의 뜻을 명분으로 내세워 원래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내겠다는 겁니다.

이른바 ‘비명횡사’를 당해 22대 국회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된 한 민주당 의원은 “그렇게 당원 뜻대로만 당을 운영할거면, 당 대표는 뭐하러 뽑나. 최고위원들은 왜 있어야 하냐. 아예 지도부 없이 진정한 당원 직접 민주주의로 가지 그러냐. 입법부터 여야 협상까지 전부 전 당원 투표에 부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또 다른 낙선 의원은 “분명히 비정상적인 상황인데 더 이상 누구도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지경에 온 것 같다”고 했습니다.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합니다. 헌법상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돼 있고요. 원내 1당의 민주당 의원들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고 오로지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만 주장한다면 여느 이익집단과 다를 바가 뭔가 싶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