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라리 자유 한국의 한 백성이 될지언정, 일본 정부의 친왕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우리 한인들에게 표시하고, 아울러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에 몸 바치기를 원한다.”
―의친왕 이강이 상하이 임시정부로 보낸 편지 내용 중
다니엘 튜더 작가·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의친왕 이강은 종종 ‘파락호’로 비난받기도 했지만,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 때론 자유도 포기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고 만났다는 여러 증거가 있으며, 미국에서 초기 한국인 ‘유학파’ 중 하나였던 그는 김규식 같은 인물들과도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와 긴밀한 관계였던 김란사(하란사라고도 알려짐)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는 유관순 열사의 스승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최초의 ‘신여성’ 롤모델이자 교육자였지만,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기 위해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길에 베이징에서 독살당했습니다. 의친왕 이강과 김란사, 그들이 시도한 독립운동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들의 의지는 보다 조명받아 마땅하지 않을까요?
다니엘 튜더 작가·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