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모키타자와는 5년 만에 가도 여전했다. 수수하고 느슨한 ‘시모키타자와풍’의 빈티지 옷 가게들이 역 앞부터 늘어서 있었다. 가게 앞에 벤치를 놓아둔 헌책방에서는 사람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헌책을 고르고, 책방 빈 곳에 대충 만들어둔 자리에서는 사장님이 끓이는 밀크티와 향냄새가 났다. 격동 21세기에 이렇게까지 그대로라니. 동아시아에 희미한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코로나19 시대를 지나 불경기가 와도 시모키타자와는 내가 알던 그곳이었다.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그 사이에서 동네의 오래된 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며칠 전에는 집에 가는 길 철물점에 걸린 현수막을 봤다. ‘35년 동안 감사했습니다.’ 폐업 인사였다. 그 옆 떡집도 몇 달 전 나갔는데 공실이 채워지지 않는다. 떡집은 학생들의 아침 식사 수요가 은근히 많고 철물점은 진정한 동네 주민의 비상용품 가게다. 동네 대형 미용실도 문을 닫고 한참 비어 있다가 그 자리에 ‘인스타 맛집’풍 삼겹살집이 생겼다. 일상적 상업공간이 나간 자리에 비일상적 시간을 보내는 식당이 왔다.
작금의 ‘로컬’ 논의에는 중요한 돈 이야기가 빠져 있다. 로컬 제품은 매끈한 대량 생산품보다 비싸고 투박할 수 있다. 쿠팡보다 나은 게 없을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로컬숍을 지키기 위해 나의 비합리적인 소비가 필요하다’는 논리에 설득력이 있을까? 자신의 소득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가성비를 외치는 현대 한국에서? 이런 면에서 보면 ‘로컬’ 논의는 처음부터 반쪽이며, 특히 서울보다 소득이 낮은 타지의 ‘로컬’은 더욱 어불성설이다. 타지 사람들이 찾는 ‘로컬’이라면 민속촌에서 파는 기념품과 다를 게 뭔가.
걱정이다. 동네 사랑방은 사라지고 ‘로컬 호소 숍’만 계속 생겨나면 어쩌지. 요즘 한국에서 가장 잘 먹히는 일은 밑도 끝도 없는 호소인 걸까. 나는 지금까지 적은 이유로 쿠팡에 가입하지 않았다. 오늘 밤 최저가로 구입한 물건이 다음 날 새벽에 오는 편리. 쿠팡의 등장 이후 많은 로컬 가게가 사라졌고 유통 생태계가 바뀌었다. 동네 곳곳의 쿠팡 상자를 보면 이런 사람은 우리 동네에 나 하나다. 그래도 가능한 한 이렇게 살려 한다. 나는 우리 동네와 이곳 가게들이 좋기 때문이다.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