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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은택]가망 없는 환자에게도 의사들이 달려가는 이유

입력 | 2024-05-26 23:12:00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미국 의학 드라마 ‘하우스(House M.D.)’에서 괴팍한 그레고리 하우스 박사와 그의 진단의학팀은 별의별 희귀질환 환자들을 마주한다. 이들은 질환, 체질, 사연을 일부러 숨기는데 하우스팀은 자택 수색까지 하며 단서를 찾는다. 그렇게 진단을 내려도 처음에는 빗나간다. 다시 토론, 검사를 반복해 병명을 찾아낸다. 그래도 가끔은 환자가 사망한다. ‘사람 하나 살리기 이리 어렵구나’ 혀를 내두르게 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3월 “행위별 수가제를 유지하면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 국민 건강 회복이라는 의료서비스 목적에 중점을 둔 가치기반 지불제로 혁신해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가치기반 지불제도의 골자는 환자의 회복 정도, 생존 여부 등에 따라 의료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진료 등 ‘행위’가 아니라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나 페널티를 주는 것. 박리다매식 진료와 낮은 급여 수가 탓에 필수의료가 붕괴에 이르자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 영국 등 의료비 지출은 큰데 의료 수준은 열악한 국가들이 주로 도입했다. 최우선 목적은 효율성 확보, 의료비 지출 감축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우려가 나온다. 한 필수의료과 전공의는 “이는 자칫하면 죽을 것 같은 환자는 치료하지 말라, 이국종 같은 의사들에게는 돈을 안 쓰겠다는 말이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가치기반의 시점에서 이들은 의료비 낭비이기 때문이다. 전면적인 가치기반 지불제하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인 하우스 박사팀이 진료비를 받지 못해 해체될지 모른다.

미국에서는 일부 우려가 현실화했다. 폐렴 등 급성 질환은 사회경제적, 기존 건강 요인 때문에 같은 시술, 치료를 받더라도 흑인이 백인보다 예후가 더 안 좋은 경우가 많다. 때문에 흑인 환자 비율이 높은 공공병원이 백인 환자 비율이 높은 병원보다 적은 의료비를 지급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불제도가 인종 간 의료 격차를 악화시키고 있다.

의료에서는 1+1이 2가 아닐 수 있다. 최선의 약과 수술이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개인의 특성과 변수들, 의료 지식의 한계 탓에 최선의 치료에도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의료진이 기울인 노력에 ‘0원’ 가격표를 매겨야 할까. 치료 결과가 좋으면 진료비를 많이 주고 그렇지 않을 땐 페널티를 준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병원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더 노력할까. 현실은 다를 가능성이 크다. 병원은 애초 회복 가능성이 큰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분류하고 되도록 전자에게만 의료 자원을 투입할 것이다. 그래야 안정적인 수익이 난다. 이윤 추구가 본질인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이다.

다행히 지금의 병원에서는 가망 없는 환자여도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의사들이 달려온다. 약물을 투여하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래도 숨을 거두면 사망 선고를 내린다. 이 모든 행위의 결과는 죽음, 0원이다. 하지만 인간과 의사만이 이런 비효율과 비생산에 기꺼이 비용과 노력을 지불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지 않으면 노인, 빈곤층, 희귀질환자 등 의료 소외 계층은 앞으로 병원 입구를 넘지 못할 수 있다. 숨이 붙어 있어도 가망이 없다면 서둘러 영안실로 보내버리는 ‘효율적인 미래’가 올지 모른다. 정부의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