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40년 만에 초등학교 체육 ‘즐거운 생활’에서 분리 추진 졸속 행정이라는 반대 이해 어렵다…충분한 사전 논의 없어 학교 체육 활성화 안 되는 건 왜곡된 체육 인식이 근본적 원인 체육은 평생 교육…생색내기나 전시행정의 도구 삼아선 안돼
교육계에 해묵은 난제 하나가 있다. 학교 체육 활성화다. 현재보다 장려해야 한다는 기본방향에는 교육계 관계자 모두 공감한다. 그런데도 현장 상황은 딴판이다. 여전히 체육은 학교에서 홀대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신적, 육체적 성장기로 진입하기 전인 유아나 저학년 초등학생들의 체육 활동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얘기다. 게다가 외부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는 운동과 아예 담 쌓은 유아, 초등학생들이 크게 늘었다. 일선 학교의 체육교사들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제대로 공을 던지고, 무리 없이 운동장 한 바퀴를 뛸 수 있는 학생은 한손에 꼽힌다. 이는 이들의 중, 고등학교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김택천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회 위원장.
김 위원장에게서 현행 체육 교육의 문제점과 해법을 들어봤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 관련 상황은 괄호 안에 담는다.)
- 40년 만에 체육이 분리돼 독자 과목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커졌는데…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부가 요청한 초등학교 1~2학년의 신체 활동 교과 신설을 골자로 하는 국가 교육 과정 변경안을 지난달 의결했다. 1982년 이후 국내 초등학교 1~2학년은 별도의 체육수업을 받지 않았다. 대신 음악 미술과 수업 시수(授業時數)를 공유했다. 이어 1989년 체육은 음악, 미술과 함께 ‘즐거운 생활’이라는 톻합과목에 포함돼 운영돼 왔다.)
“체육은 초등학생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받아야 할 과목이다. 그런데 정반대로 갔다. ‘즐거운 생활’에서 체육을 빼내려고 몇 년간 노력을 했다. 당초 ‘즐거운 생활’에 묶어둔 것은 음악, 미술과 아우르며 시너지를 내겠다는 취지였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인터뷰하면 ‘체육 과목이 생겨서 좋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우리 교육 체계에서 3학년 수준에 맞는 적정한 체육 과목 프로그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그냥 뛰어놀 시간과 희망이 생겨서 좋다고 한다.”
- 이들의 의견에 동의하나?
“충분한 논의 없는 졸속 행정이라고 주장하는데, 교사들은 학생들을 위해 존재한다. 학습과 육체적인 성장이 균형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학교와 교사가 지원을 안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초등학교 1~2학년인데 학교에서 최소한의 체육 활동도 보장해주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을 거다. 소아·청소년 비만, 과체중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소아 비만의 80%는 성인 비만으로 이어진다. 비만으로 인해 투입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근 3년 사이 15% 정도 늘어났다. 학생들이 병원치료를 받는 시간을 운동과 같은 신체활동 등으로 바꿔줘야 한다.”
- 체육이 오래동안 분리되지 못한 이유에 국영수로 대표되는 이른바 ‘도구’ 과목에 목을 매는 교육 인식, 이 교육을 중요시했던 교육자들의 이기주의가 작용했다는 뜻인가?
“교육자들의 전반적인 인식이 왜곡돼 있다. 운동이 공부를 방해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이게 체육을 하면 공부를 못한다는 인식으로 굳어졌다. 학생이 전문 운동 선수가 되면 공부의 강을 건넌 것으로 보는 식이다. 2023년 기준으로 국가 전체 교육 예산에서 학교 체육 활성화에 배정된 예산 비중이 0.05%에 불과하다. 아직도 체육을 비생산적 활동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초등학교 1~2학년 교과에 체육을 만든다는 계획에 학부모들의 찬성 비율이 반대보다 높다. 정신적 성장과 함께 신체적 성장을 위해 휴식과 수면, 운동은 필요하다. 그런데 휴식, 수면은 권장하면서 운동은 자제하라고 상반된 얘기를 한다. 체육은 성장기에 반드시 필요하다.”
- 체육의 가치를 너무 단순하게 여긴 것 아닌가?
“과거 체육 시간에는 농구공을 골대에 몇 개 넣고, 축구 슈팅 몇 개를 골문에 넣는지가 중요했다. 숫자대로 점수를 줬다. 그것을 경험한 교육자들이 진정으로 학교 체육 활성화를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런 분들이 체육 과목을 다른 시간으로 바꿔놓고 위축시켰다. 그 여파가 계속 확대 재생산됐다. 체력 향상과 학업 능력 향상에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사회성을 강화하는 게 체육이다. 그런 체육 수업을 멈추게 했다.”
-체육을 상급 학교 진학, 대학 입시 점수에 반영하는 식의 해법은 학교 체육 활성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보는데…
“이제는 점수를 준다해도 하기 싫으면 안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체육은 평생하는 거다. 체육이 점수화되면 학교를 졸업한 뒤 운동을 안 한다. 점수 잘 받으려고 운동을 잘 하는 학생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공교육에서 건전한 체육 문화가 형성되지는 않을 거다.”
- 교육 현장에서 애쓰는 체육 교사들의 맘 고생도 크겠다.
“ ‘현재 학교 체육이 왜 이럴까’라고 생각해보면 나도 잘못이 있다. 체육을 오래 가르쳤지만 돌아보면 체육의 긍정적인 가치를 잘 알려주지 못했다고 본다. 체육의 교육적 가치를 아는 교사들은 힘들었을 거다. 체육을 외면하는 일은 학생들을 외면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즐거운 생활’ 에서 체육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혁명적인 일로 평가해야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등학교 1~2학년에 체육 과목이 40년 가까이 없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의아해한다. 체육 분리는 초등학생들한테 행복을 돌려주는 일이다. 그런데 한 교사가 묻더라. 체육을 분리한다고 초등학교 체육 교육의 내실화가 이뤄지겠냐고. 이 말 뒤에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그동안 안 하던 것을 함으로써 받게 될 스트레스가 굉장히 클 것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고 본다. 초등교사들은 학생들을 위해서 스트레스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게 맞다. 그게 안 되면? 학생들을 위해 다른 방법을 학교나 교사에게 요구해야 한다.”
-일부 시도 교육청에서 학생들의 ‘0교시 아침 운동’을 장려하고 있다. 부산 같은 곳은 잘 운영되고 있다.
“지속적으로 진행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생긴다. 일시적 이벤트여서는 안 된다. 체육은 평생 교육이지 생색내기나 전시교육으로는 안된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