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전설’ 정국현 한국체대 교수의 발차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정국현 교수 제공
정국현 교수의 날라차기 모습. 공중에서도 자세에 한 치 흐트러짐이 없다. 정국현 교수 제공
정 교수의 주무기는 빠른 발놀림에 이은 무시무시한 발차기였다. 어찌나 빠르고 힘이 넘치는지 상대 선수들은 이미 경기 전부터 주눅이 들어있곤 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태권도 진흥재단 사무총장을 역임한 그는 현재 세계태권도 연맹과 아시아 연맹 집행위원, 대한체육회 경기력향상분과 부위원장 등을 맡으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국현 교수가 시범 종목으로 치러진 1988 서울올림픽에서 상대 선수를 발차기로 공격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그의 태권도 인생이 겉보기처럼 순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가 한창 선수로 뛸 당시의 태권도 선수의 생활이라는 게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니었던 그 시절(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엔 실업팀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대학 졸업 후 군대를 다녀오면 빠른 은퇴를 했다.
1988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하태경(플라이급, 남), 추난열(플라이급,여), 정국현(웰터급, 남)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운동 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실제로 그는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는데 운동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했다. 이미 세계선수권을 3연패 한 그는 지인의 도움으로 여수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까스로 운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1987년 세계선수권까지 4연패에 성공할 수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시범종목 금메달이라 훈장도 연금 혜택도 없었다. 메달리스트들을 위한 청와대 초청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서울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당시 그는 지하철공사 태권도 팀에서 코치 겸 선수로 뛰고 있었는데 당시 그의 직급은 일반 청원경찰이었다. 그는 “청원경찰을 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지만 세계선수권 4연패에 올림픽 금메달을 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그는 모교인 한국체대 교수로 정식 임용됐다. 마흔 가까이 돼서야 그는 겨우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이론에도 박식한 정국현 교수는 올림픽 때마다 방송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정국현 교수 제공
선수 때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겨루기의 최강자였던 그는 요즘은 품새를 주로 가르친다. 세계태권도연맹(WTF)은 2000년대 초반부터 종목 다변화를 시도하며 대대적인 품새 보급에 나섰는데 그는 막 표준화되기 시작한 ‘태극 품새’의 시연자를 맡았다.
정 교수는 “내 자세가 좋아서라기보다는 품새 보급을 위해 세계선수권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인물을 쓰고자 했던 것 같다”며 “나도 품새엔 익숙하지 않아 처음엔 나도 이규현 사범님으로부터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배웠다”며 웃었다.
현재 그는 태권도 공인 8단이다. 실력만으로는 국기원이 인정하는 최고의 단인 9단을 달만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단을 쌓아 올려가고 있다. 3년 전에 8단을 딴 그는 “8단을 취득한 뒤엔 8년이 지나야 승단 시험을 볼 수 있다”며 “9단에 도전할 때쯤이면 일흔 가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몸 관리를 잘해 9단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국현 교수가 젊은 시절 발차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정국현 교수
요즘도 그의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해 운동으로 끝난다. 그는 오전 6시면 기상해 학교로 출근한 뒤 인근 올림픽 공원을 30분 가량 가볍게 뛰며 몸을 푼다. 이후 학교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30분 가량 근육 운동을 한다.
그는 “나이가 늘수록 가장 중요한 게 유연성과 근력 운동”이라며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근력 운동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복근 강화를 위해 윗몸 일으키기와 레그 레이즈 등을 하고 하체 단련을 위해선 레그 컬, 레그 엑스텐션 등을 열심히 한다.
이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아침을 먹고 다시 학교로 출근한다. 이를테면 운동을 위해 한 번, 수업을 위해 한 번 등 하루에 두 번 출근을 하는 것이다.
그는 일과를 마친 뒤에는 배드민턴도 자주 친다. 실내체육관에서 한두 시간 라켓을 휘두르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는 “사우나에서 빼는 땀과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빼는 땀은 천양지차다”라고 말했다.
국제 연맹 등에서도 활동하는 그는 해외 출장도 잦은 편이다. 그가 짐꾸러미에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운동하와 반바지, 그리고 티셔츠다. 그는 “어느 호텔을 가도 피트니스 센터가 있지 않나. 한국에서 오전 6시에 일어서 가벼운 달리기도 하루를 시작하는 것처럼 외국에 나가서도 6시 기상 후 달리기의 루틴을 꼭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정국현 한국체대 교수가 한국체대 교정에서 태권도 준비 자세를 해 보이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그가 운동을 하는 중장년층에게 준비운동의 중요성은 특히 강조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준비운동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골프만 해도 일찌감치 몸 이곳저곳을 풀어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빈 스윙 몇 번만 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부상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고, 준비되지 않는 몸은 더 크게 다칠 수 있다. 좀 귀찮더라도 준비운동의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로는 꽤 늦은 나이인 28세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이렇다 할 큰 부상도 당하지 않았다. 운동과 함께 꾸준한 음식 관리도 영향을 미쳤다.
단적으로 그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는 “선배들을 따라 술집을 가도 술은 거의 마시지 않고 과일이나 오징어 안주에 콜라를 홀짝이다 돌아오곤 했다”며 “원래부터 술이 받지 않는 체질이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다 만약 젊어서부터 술을 많이 마셨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히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선수들이 커피 등을 마실 때도 몸에 좋은 우유나 쌍화차를 마셨다. 그는 또 선수 생활을 할 때나 지금이나 절대 몸을 무리하게 쓰지 않는다. 피곤하다 싶으면 바로 휴식을 취한다.
100세 시대를 맞아 그는 인생 3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한평생 태권도계에 몸담으면서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아왔다. 좁게는 태권도계, 더 넓게는 한국 스포츠계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며 “일단 학교에 몸 담고 있는 이상 한국 태권도의 미래를 짋어진 학생들을 잘 지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향후엔 대한민국 태권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국제적으로도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